인간만이 이별의 고통을 반복하는 이유
유독 인간만큼은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한다.
분명 처음 만날 때는
보랏빛 미래를 그리며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이
마지막 사랑이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마지막이라 믿었던 그 사람은
어느새 과거의 사람이 되고,
내 옆에는 또 다른 인연이 자리한다.
왜 인간만큼은
한 사람과 끝까지 가지 못하는 걸까.
사람들은 말한다.
성격이 맞지 않았다고,
현실적인 여건이 맞지 않았다고,
최악으로는 다른 사람이 생겼다고...
그럴듯한 설명들이다.
하지만 이별을 설명하는 말들은
대부분 이별 이후에야 등장한다.
여기서 하나 궁금해진다.
왜 유독 인간만
이별의 고통에 이토록 쉽게 노출되는 걸까.
동물들도 번식기가 되면
새로운 파트너를 만나는 일은 흔하다.
하지만 동물의 세계에는
이별로 인한 후유증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상실감도, 자아의 붕괴도 없다.
그나마 예외라면
주인과 강한 유대를 맺은 동물이나
아주 일부 특정한 종들 정도다.
그렇다면 차이는 어디서 생기는 걸까.
인연의 시작을 떠올려보자.
외모, 성격, 능력, 경제력.
우리는 수많은 조건을 말한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보이는 것’에서 출발한다.
혹시 우리는
인간이라는 복잡한 존재를
너무 빠르게 판단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예전 어른들은
“한 사람은 사계절을 겪어보라”라고 말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실제로
오랜 연애를 거친 커플일수록
이혼율이 낮다는 통계도 존재한다.
이 말들이 가리키는 지점에는
분명 단서가 있다.
첫인상과 강한 호감은
짧은 시간 안에 인연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의 일부만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시작이 될 가능성도 함께 안고 있다.
인간은
자신을 꾸미는 데 매우 능숙하다.
회사에서는 일 잘하는 사람,
집에서는 살림꾼,
연애에서는 미래를 함께 그릴 수 있는 사람.
상대가 원하는 모습에 맞춰
가장 적절한 가면을 빠르게 선택한다.
초기에는 그 가면이 견고해 보인다.
심지어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낙엽이 떨어지고
눈이 내리는 사이,
가면은 서서히 옅어진다.
그제야
말보다 습관이,
약속보다 태도가 드러난다.
잘못 시작된 인연의 대가는
생각보다 크다.
이미 인연에게
삶의 주도권을 건네준 뒤라면
헤어짐 이후에 남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텅 빈 자아의 공간이다.
그리고 그 공백은
쉽게 메워지지 않는다.
내가 그 인연을
얼마나 믿었는지에 비례해서.
설렘과 감정이 거짓이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감정만으로
인연을 시작하기에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너무 깊다.
감정에 모든 것을 올인하는 순간,
관계는 균형을 잃는다.
나는 소중한 존재이다. 그럼 내 존재에게
소중한 인연으로 답해야 한다.
당장의 설렘이 아니라,
시간을 통과했을 때도
서로가 무너지지 않는 사람인지.
그 질문을
조금 늦게 던져도 늦지 않다.
그 질문을 견디지 못하는 인연이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갈 수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나는 이제
사계절을 함께 걸 수 있는 관계를 기준으로 삼는다.
봄의 설렘만이 아니라
겨울의 침묵도 함께 견딜 수 있는 관계.
그 기준 앞에서
나는 조급하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