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자아가 나를 놓아주지 않을 때
관계의 틀 속에서
하루의 시작과 끝, 더 크게는 인생의 시작과 끝이 반복된다.
우리는 결코 혼자 존재할 수 없는 존재다.
그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이 ‘관계’라는 틀은
너무 견고하고 거대해서
우리는 점점
나 자신이 누구인지 생각하기보다
누구와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 사람인지로
스스로를 규정하며 살아간다.
누구의 자식,
어느 조직의 직책,
어떤 아이의 부모.
이름표는 늘 정확하고 빠르다.
그만큼 본래의 나는
조용히 뒤로 밀려난다.
사회적 자아의 색이 짙어질수록
내 본래의 색은 서서히 흐릿해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나를 잊은 채
잘 걷고 있다는 착각 속에 놓인다.
그때 찾아오는 것이 고독이다.
고독은 두렵다.
누군가로부터의 고립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나라는 인간의 가치가
결핍된 상태처럼
막연한 불안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고독을 피하려 한다.
다시 관계로,
다시 역할로,
다시 사회적 자아의 그늘 속으로 돌아가려 한다.
하지만 고독은
결코 두려움 그 자체가 아니다.
고독은
나라는 존재가 본래의 모습을 보려 할 때마다
사회적 자아가 보내는
애증이자 집착에 가깝다.
“아직은 안 된다.”
“여기서 벗어나면 불안해진다.”
그렇게 고독은
우리를 붙잡는다.
고독이 낯설고 불편한 이유는 분명하다.
그곳에는
꾸며진 얼굴이 아니라
스스로의 민낯이 비치기 때문이다.
그 민낯은
부족함일 수도 있고,
욕망일 수도 있으며,
아직 이름 붙지 않은 나일 수도 있다.
그래서 고독은 친근하지 않다.
그러나 필요 없는 것도 아니다.
고독은 감정이라기보다
나를 구성하는 구조의 다른 면에 가깝다.
동전의 뒷면처럼,
분명 존재하지만
스스로 뒤집지 않으면
없는 것처럼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동전은
앞면만으로는 가치를 증명할 수 없다.
앞과 뒤가 함께 있을 때에만
비로소 하나의 동전이 된다.
이제는 뒤집어 볼 차례다.
뒷면에 무엇이 적혀 있는지는
누군가 대신 알려줄 수 없다.
그 자리에 무엇이 있는지는
오직 스스로가 마주할 때만
비로소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