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언제 히어로가 되는가

히어로는 결심이 아니라 반응이다

by 간극

우리는 어릴 때 한 번쯤

목에 망토를 두르고 히어로가 되기를 꿈꿨다.


인간의 힘을 넘어서는 힘과 지력으로

악을 무찌르고 세상을 구하는 존재.


그 꿈은

산타클로스가 사실은 아버지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

히어로와 함께 퇴장한다.


산타와 히어로는

같은 날, 같은 이유로

어른의 세계에서 조용히 밀려난다.


하지만 슬퍼할 필요는 없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히어로와 산타는 언제든 복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장면들은

이미 인간의 세계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차에 치일 뻔한 아이를 붙잡는 순간,

떨어지는 몸을 반사적으로 낚아채는 순간.


평소에는

소파와 일심동체가 되어

리모컨 떨어지는 소리에도 눈을 감던 사람이,

그 순간만큼은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


우리는 왜 늘 히어로가 아니고,

이런 극단적인 조건에서만

눈을 뜨는 걸까.


나는 그 답을

‘무의식적 생존반응의 강제적 현현’이라고 부르고 싶다.


인간의 뇌는 효율적이다.

고통을 싫어하고,

조금만 피로해도 하품을 보내

우리를 강제적인 휴식 상태로 밀어 넣는다.


그만큼 강력한 능력은

늘 봉인된 채로 남아 있다.


하지만 봉인은

살아 있어야 의미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위험은

그 봉인을 그대로 두지 않는다.

그 고통은

뇌에게조차 달갑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선택하기도 전에 움직인다.


이걸 본능이라고 설명할 수는 있다.

하지만 설명이 끝났다고 해서

그 순간의 의미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때 우리는

히어로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 아니라,

히어로가 필요해진 세계에

내던져진다.


인간의 잠재력은

생각보다 훨씬 크다.

다만 대부분의 시간 동안

발동 조건을 만나지 않을 뿐이다.


우리는 히어로와 산타를

상상과 허구로만 치부해 왔는지도 모른다.


진짜로 히어로와 산타가

존재하는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하나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순간,

우리는 평소의 나보다

조금 더 멀리 뛰어 있다.


히어로는 늘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히어로가 되는 순간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 순간,

나는 분명히

평소의 나와는 달랐다.


그리고

나도 당신도

그런 순간을

이미 한 번쯤은 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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