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공주의 목소리

우리는 언제부터 스스로와 ‘불공정 거래’를 시작했는가

by 간극

어릴 적 동화 속 인어공주는

나에게 꿈과 희망의 세계를 열어준 존재였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다시 읽어보니,

그 이야기는 더 이상 순수한 사랑담이 아니었다.

오히려 거래의 이야기, 더 정확히 말하면

“존재를 담보로 한 계약”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히어로도 없고 산타도 없다는 걸 알아버린 지금,

인어공주의 선택이 묘하게 다르게 읽혔다.




1. 인어공주는 불쌍하지 않았다


우리는 오랫동안 인어공주를

사랑에 모든 걸 바친 순수한 피해자로 여겨왔다.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녀는 피해자라기보다 자기 존재를 저당 잡힌 계약자에 가깝다.


악마는 사악했지만,

그의 거래 조건은 오히려 명확하고 공정했다.

“목소리를 내어라. 다리를 주겠다.”

조건과 대가가 완전히 일치하는 거래였다.


문제는 악마가 아니라 인어공주였다.

그녀는

“바다라는 존재의 자리”를 버리고

“땅 위의 꽃이 되고 싶은 욕망”을 위해

자신의 본질을 대속물로 내어놓았다.


꽃은 들판에 있을 때 아름답다.

바다 위의 꽃은 이미 시들어버린 부산물일 뿐이다.




2. 인간도 다르지 않다


인어공주의 이야기에서 눈을 떼기 힘든 이유는,

결국 우리가 그녀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랑뿐 아니라

돈, 지위, 명예, 인정, 관계를 얻기 위해서도

늘 무언가를 내어준다.


문제는 그 ‘내어줌’이

대개 존재 그 자체라는 점이다.

! 내가 원하지 않는 직함을 입고

! 내가 원하는 삶과 멀어지는 선택을 하고

! 나의 목소리를 잃어버린 채

!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살아내며


우리는 매일 인어공주처럼

스스로와의 불공정 거래를 반복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성장” 혹은 “책임”이라고 포장한다.

하지만 사실은 더 가깝다.


존재를 흘려보내고,

자아를 저당 잡혀가는 과정.




3. 인어공주가 남긴 진짜 교훈


동화 속 인어공주는 거품처럼 사라졌다.

그러나 그 결말은 비극이 아니라 경고다.


꿈은 존재를 대신할 수 없다.

존재를 거래한 대가는 언제나 상상 이상이다.


우리는 바다의 존재를 가진 채 태어났다.

그 존재가 지닌 목소리는,

거래의 대가로 잃어버릴 만큼 하찮지 않다.


어쩌면 인어공주가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는

이 한 문장일지 모른다.


“내가 누구인지 잊고 이루는 꿈은,

결국 나를 지워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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