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의 명제를 다시 묻다
데카르트는 말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 문장은 철학을 전공하지 않아도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큼
우리 사고의 기준처럼 자리 잡아 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잠을 자는 동안
나는 존재하지 않는가?
꿈을 꾸는 동안에도
생각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생각을
‘존재의 증거’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생각이 있어도,
의심이 없으면
존재는 어디에서 증명되는가.
우리의 존재는
의식이 켜질 때만 나타났다
꺼질 때 사라지는
온·오프 스위치 같은 것일까.
인간이 의식만으로 살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수많은 반응과 선택은
생각보다 훨씬 먼저 일어난다.
그렇다면
‘생각’만으로 존재를 증명한다는 기준은
너무 단편적인 것은 아닐까.
어쩌면 데카르트가 말한 ‘나’는
존재 전체가 아니라
깨어 있는 자아였을지도 모른다.
그 자아는 불안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며,
의심하고,
언제나 세상의 중심에 서 있으려 한다.
우리는 이 자아를
버릴 수도 없고
완전히 벗어날 수도 없는 상태로
인생을 살아간다.
하지만 자아가
우리 존재의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혼란은 조금 줄어들지 않을까.
유독 설명 없이 싫은 것,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일,
이유 없이 끌리는 감정들.
우리는 이런 것들을
모두 자아의 문제로만
돌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데카르트는
존재의 본질을 알고 있었을까.
그는 무의식의 선반응도,
리벳 실험도 알 수 없는
“그는 무의식의 선반응도,
리벳 실험도 알 수 없던 ,17세기의 사람이었다.”
지금은
수백년이 지난 시대다.
이제 우리는
존재를
다시 한 번
의심해 볼 수 있다.
나는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하는가.
아니면,
존재하기 때문에
생각하는가.
(실수로 한 번 지워졌던 글입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