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돈이 되냐

자본주의가 존재에게 던지는 예방적 폭력

by 간극

어릴 때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의 암묵적인 폭력을

부모님의 거대한 성벽 안에서 보호받으며 산다


그 안에서는

하고 싶은 꿈을 꾸는 권리조차

마치 당연한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그 성벽을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벌거벗겨진 채 사회에 던져진다.


그때서야 깨닫는다.

우리가 꾼 꿈은

부모님의 품 안에서만 가능한 꿈이었고,

이제부터는 각자가 살아남아야 하는

전쟁이 시작된다는 걸.


물론 어떤 사람들은

타고난 기질, 환경과 노력으로

피식자가 아닌 포식자의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 전환은 생각보다 자주 일어난다.

포식자가 피식자가 되고,

피식자가 포식자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은

‘내 존재로 사는 삶’이 아니라

‘살아남는 데 초점이 강제된 삶’을

살아가게 된다.


모두가 사회에서

부를 잘 버는 기술이나 능력을 가진 건 아니다.

그런데도 사회는 끊임없이

우리의 존재를 수익성으로 환원하려 한다.


돈이 안 되는 행위들에 대해

사회는 너무 쉽게 냉소한다.


글을 쓰면 돈이 안 되고.

철학을 해도 굶어 죽기 딱 좋고.

예술을 해도 결국

자기만족이라는 프레임을 씌운다.


그리고 더 무서운 건,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이

아직 실패하지도 않은 인간에게

실패를 예언한다는 점이다.


“그게 돈이 되냐.”


이 말은 조언처럼 들리지만

조언의 가면을 쓴

기준을 강요하는 방식이다.


부자가 되는 건

많은 인간이 품는 보편적 꿈일 수 있다.

하지만 보편적 꿈이라고

모든 인간의 꿈이 부자가 되는 건 아니다.


방향을 잃고 방황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실패가 아니다.

꿈으로 가는 성장통일 뿐이다.


진짜 실패는

사회가 던지는 압박 앞에서

내 꿈의 기준을

스스로 포기하는 순간이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미리부터 포기하려는 감정을

미리부터 입힐 필요는 없다.


꿈을 수익성으로 바꾼 순간,

당신은 실패 없이 늙는다.

그건 실패가 아니라

스스로를 환전한 결과다.


작가의 이전글나의 슬픔은 왜 늘 혼자의 몫이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