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앤 시가렛

어울린다 어울리지 않는다

by 데이지

그는 커피를 마시고 그녀는 담배를 피웠다. 그들이 처음 만난 카페는 커피도 팔고 담배도 팔았다. 여자가 막 카페에 도착하자 남자는 이미 앉아서 커피 두 잔을 마주하고 있었다. 여자를 발견한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여자가 앉을 의자를 빼 주었다. 여자는 테이블 앞에 놓인 휘핑크림이 잔뜩 올라앉은 커피를 보며 표정을 관리했다.


-이거 제 건가요?

-아, 네. 제가 미리 시켜놓았어요. 이게 슈크림 바닐라 하이라이트 라떼라고 이 집 시그니처인데 품절이 빨리 돼서 한번 드셔보시라고...


남자는 자신의 행동에 자부심을 느끼며 여자의 감동을 기대하는 듯한 말투로 당당하게 말했다.

- (내가 뭘 좋아할 줄 알고?)

여자는 속으로 생각했다. 뭘 좋아할지 몰라 이것저것 다 준비했어요도 아니고 이것은 이 집 시그니처라서 너한테 꼭 먹여 보고 싶었어라는 남자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여자는 벌써부터 오늘 이 남자와 첫 만남의 엔딩이 불을 보듯 뻔하게 예측됐다.


-저, 담배 한 대 피우고 와도 될까요?


자신이 추천하는 시그니처 커피를 마시고 그 맛에 대한 품평을 기대하고 있던 남자의 기대를 저버린 대사가 여자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담배요?


실망한 남자가 되물었다.

- 오늘 한 대도 안 피웠더니 못 참겠네요.

- 이 카페에서 담배도 파는데...

- 카페에서 담배를 다 팔아요?

- 네!

- 근데 저는 제 담배 있어요.


여자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려는데 담뱃갑에는 한 개비의 담배도 남아 있지 않았다.

- 제가 담배 사 드릴게요. 같이 가요.

- 아니에요. 커피 드시고 계세요. 금방 올게요.


비흡연자 옆에서 담배를 피우는 걸 싫어하는 여자와는 상관없이 남자는 여자를 따라나섰다. 여자의 저지에도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옥상에는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담배의 불이 잘 붙지 않았다. 여자의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마구 흔들렸다. 남자는 바람이 부는 방향을 가로막아 섰다. 담배에 불이 붙었다. 여자는 남자에게 옆은 웃음을 지었다. 여자는 불편하게 담배를 한 모금 빨았다. 연기가 남자를 향하고 남자는 기침을 콜록거렸다. 남에게 피해 주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여자는 애초에 담배를 피우러 오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담배를 급하게 비벼 껐다.


-왜요. 더 피우셔야지요. 아깝게.


남자는 연신 기침을 콜록거리며 여자가 버린 담배를 집어 들어 여자에게 권했다. 여자는 표정을 관리하지 못하고 얼른 옥상에서 탈출했다.


커피는 식어 있었고 시그니처인 슈크림 바닐라 하이라이트 라떼의 크림은 무너져있었다.


- 어? 크림이... 잠깐 계셔 보세요. 다시 시켜 드릴게요. 품절이 안 됐으려나...

일어서는 남자를 보며 여자는 급하게 커피를 들이켰다.


-마셨어요. 맛있네요. 안 시키셔도 돼요.

여자는 남자를 주저앉혔다. 여자의 입가에 크림이 묻어 있었다.


-어?


남자는 여자의 입가에 묻은 크림을 오른손으로 재빠르게 닦았다. 허락 없는 스킨십을 극도로 혐오하는 여자는 하마터면 남자의 뺨을 향해 손을 올릴뻔했지만 가까스로 충동을 억제했다.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한 사람에게 극도의 당황과 분노를 표출하는 건 자신만 이상한 사람이 된다는 걸 여자는 알고 있었다.

- 어때요? 크림이 정말 끝내주지 않아요? 커피도 맛있죠?

이제 크림과 커피를 섞어서 마셔 보세요.


남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여자는 커피를 끝까지 한방에 쭉 들이켰다.

얼른 다 마시지 않으면 남자의 시선이 여자에게서 영원히 떠나지 않을 것 같았다.


- 맛있어요. 크림도 커피도.

- 쓰리 샷 고함량 카페인이라 좀 섞어 드셔야 하는데...


어쩐지 여자의 심장이 벌렁대기 시작했다. 남자의 수다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남자는 자신의 취향에 대해 떠벌리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칵테일. 그 칵테일을 잘 만드는 칵테일 바. 좋아하는 음악 취향. 그 음악들을 틀어대는 락앤롤바. 그 락앤롤바가 들어선 건물과 그 건물이 25년 올해의 건축대상에서 건축상을 받은 건물의 지하에 위치해 있다는 것. 그가 좋아하는 산책코스, 그리고 그 코스에 해가 지는 시각과 일몰 풍경. 숙면에 좋은 침대 형태. 그 형태의 침대를 판매하고 있는 브랜드. 외국에서 더 잘 판매되는 침대 매트리스 브랜드. 최근에 상장한 그 매트리스 기업의 주가와 향후 전망. 그리고 자신이 사 모으고 있는 와인. 와인 브랜드. 그 와인 브랜드의 본고장 캘리포니아. 캘리포니아 와이너리에 방문했던 경험담. 그리고 그 와이너리를 국내 대기업이 인수했다는 것. 그래서 그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마트의 매주 수요일 와인이 할인행사를 할 때마다 방문해서 2,3병씩 사 온다는 것. 그리고 그 마트에서 PB상품으로 판매하는 라면 브랜드와 그 라면의 맛. 그 라면을 가장 맛있게 끓이는 물의 양과 면발의 쫄깃함을 유지하기 위한 불의 온도와 물의 끓는점까지 이야기를 들었을 때 여자는 정말이지 미쳐버리게 지쳐 있었다. 언제쯤 그의 수다가 종착역에 도착하는지 남자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의 하품과 감출 수 없는 지루한 표정, 그리고 눈에 낀 눈곱도 헤아리지 못한 채 자기도취에 빠진 수다 삼매경이었다. 지금 여자가 자신의 눈앞에서 그가 내뱉는 이야기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것을 헤아리지 못한 채 아니 여자가 자신의 눈앞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지 조자 의심할 만큼 일방적인 수다를 쏟아대고 있는 남자에게 끝까지 예의를 지켜야 하는지 의문이 일 때쯤 남자는 말했다.


- 아, 이런! 너무 제 얘기만 했죠? 이제 식사하러 갈까요? 양고기 어떠세요?

근처에 기똥차게 맛있는 양고기집 있는데. 냄새도 전혀 안 나고. 가실까요?


여자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어느새 남자의 손에 이끌려 기똥차게 맛있다는 양고기집 문 앞에 서 있었다.

- 여기에요. 들어가시죠!

남자는 양고기집의 문을 열어 여자를 안내했다. 여자는 살며시 문을 닫았다.

- 저,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몸이 좀 안 좋아서.

- 네? 어디가 어떻게요? 병원 같이 갈까요?

- 아, 아뇨!!!


여자는 생각했다. 지금 확실히 하지 않으면 어느새 남자의 손에 이끌려 병원에 누워 있을 것 같았다.


-저 집에 가면 괜찮아져요.

-아쉽지만 그럼... 이 양고기집은 다음에 꼭 같이 와요.

-아뇨. 다음은 없어요.

-네?

-저 지금 고함량 카페인 때문에 심장이 벌렁거려요. 저는요, 카페인 섭취 못 하고요.

양고기도 정말 싫어하고요. 산책도 록음악도, 와인도, 라면도 싫어합니다.

그리고, 가장 싫어하는 건 상대방 취향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취향만 늘어놓고

강요하는 거요. 세상에 자신이 좋아하는 게 제일이고, 그 좋아하는 걸 상대가

함께하면 당연히 좋아할 거라 일방적이고 독단적으로 생각하고 상대방이 좋아하는

거에 취해 행복해하는 거, 그게 젤 싫어요!

-아!


남자의 입에서 짧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죄송해요. 몰랐어요!

-그러니까 그런 걸 모르는 걸 정말 싫어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여자는 벌렁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남자에게 등을 보이며 빠르게 뒤돌아 걸었다. 여자는 그렇게 남자에게서 멀어져 갔다. 여자는 담배를 피웠고, 남자는 커피를 사러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편의점 앞에는 함께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우는 한 쌍의 남녀가 깔깔대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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