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엄마라서 미안해.

by 문득 달

그럼에도,

나는 네가 내 딸이라서 고마워.


싱글맘으로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이에게 미안한 것 투성이이다.

특히 친구들의 아빠 이야기가 나오면 지레 미안해진다.

아이는 이제 엄마 아빠의 이혼 사실을 친구들에게 알렸고,

그게 그럴 수도 있다는 식의 사고를 할 만큼 컸는데, 나 혼자 미안해한다.


그런데 이 감정은 특별히 내가 싱글맘이라서가 아닐 것이다.

모든 부모는 모든 게 다, 별 게 다, 미안하다.


워킹맘은 워킹맘이라서 미안하다.

전업맘은 전업맘이라서 미안하다.

싱글맘은 싱글맘이라서 미안하다.




10월 즈음 아이의 눈 크게 뜨기가 조금 심해졌다.

어느 날 갑자기 눈을 위로 치켜뜨는 게 보였다.

비염이 심해질 땐 코 찡긋이나, 코를 마시는 것도 내 눈에 띈다.

나만이 알아챌 수 있는 신호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르는 나만 아는 비밀이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요즘 피곤하구나.

심하지 않을 때 재빨리 한약을 먹어야겠구나.


아이에게 묻는다.

"요즘 피곤해?"

"응, 엄마, 피곤해. 눈도 요즘 많이 피곤하고 그래."

"1년에 한 번씩 한약 먹으니까, 지금쯤 먹을 때 됐다. 한의원 갈까?"

"힝 싫은데.. 그래도 가야겠지?"


아이는 안다.

틱이라는 용어를 모를 뿐.

몸이 피곤할 때 자신이 눈을 크게 뜬다는 것을.

그저 눈이 피곤한 증상 정도로 알고 있다.


아이는 안다.

틱이라고 하지 않을 뿐.

코가 자주 간지럽고 비염이 심해질 땐 코를 찡긋 거린다는 것을.


그럴 땐 우린 한의원에 가서 눈이 피곤하다고(원장님께는 미리 전화로 틱 증상에 대해 귀띔을 해 둔다.) 얘기하고, 진맥을 하고, 한약을 지어 온다.


처음 틱 증상을 보인 것도 계절상 이 즈음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가을.

아이는 초등학교에 적응 완료였다.

급한 일이 있을 때 부탁할 수 있을 정도로 아이 친구 엄마들과 친분을 쌓았다 생각했다.

1학기가 마치고, 나는 복직을 했다.

아이는 내 차로 등교해서 아침 돌봄 교실에 갔다가, 오후 돌봄을 마치면, 혼자 하교를 했다.

다른 친구들은 엄마가 학교 앞으로 오는데, 아이는 혼자 학원이나 집까지 걸어야 했다.

물론 학교에서 학원이나 집은 가깝지만, 아직 8살이다.

물론 아이 혼자는 잘 하지만, 세상은 너무나 무섭다.

두어 달 혼자 그렇게 잘, 무사히, 다녔다.

그 무렵, 아이는 눈을 깜빡이고 위로 치뜨는 틱 증상을 보였고,

놀란 아이 아빠(당시는 이혼 전)는 재택근무를 했다.

나는 너무 일찍 복직한 나를 원망했다.

혼자 아무 사고 없이 집에 와야 하고, 30분 정도였지만 혼자 집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무서웠을 것이다.

잘 해내야 한다고, 엄마 아빠를 걱정시키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이후로 아이에게는 1년에 한두 번 나만 눈치채는 눈 크게 뜨기, 코 찡긋하기가 자주 보이는 시기가 찾아온다.


내가 뭔가 아이를 불안하게 했나?

아이 혼자 또 잘해보려 끙끙 애쓰는 걸까?

하다가 며칠 전 일에 생각이 미쳤다.


정말이지, 미쳤지, 내가.


아침에 아이가 혼자 롤빗으로 머리를 돌돌 말아 빗다가 긴 머리카락이 롤빗에 엉켰다.

혼자 풀어보려 낑낑대다 머리카락이 더 엉켜버렸다.

바쁜 출근길에 잘 풀어지지 않는 엉킨 머리카락을 붙잡고, 징징거리는 아이와 씨름을 하다 나는 결국 폭발하고야 말았다.


"그러게! 왜! 물어보지도 않고 혼자 하다 이 모양으로 해놔!"


보다 못한 나의 엄마가 달려와 엄마의 손녀를 달랬다.


겨우 머리카락이 엉킨 것뿐인데 왜 그렇게 소리를 질렀나 모르겠다.

혼자 잘해보려다 엉킨 머리카락이 엄마를 속상하게 했다는 생각에, 아이는 힘들었다 보다.


한 가지 일이 더 떠올랐다.

여름방학 무렵부터 그즈음까지 어질러진 아이 책상이 눈에 계속 거슬렸고,

물건을 쓰고 제 자리에 정리하는 것이 무어 그리 힘든 것이냐고 잔소리를 늘어놨고,

정리하지 않으면 싹 다 갖다 버린다는 엄포도 놨고,

실제로 싹 다 쓰레기봉투에 담는 쇼까지 했었다.


계속 정리하는 것 때문에 엄마가 불편해하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머리카락까지 엉켜 엄마를 화나게 하고 말았으니,

아이는 잘 해내지 못하는 자신에게 실망하고, 그 사실이 아이를 힘들게 했을 것이다.


언젠가 아이는 "엄마는 나랑 한 작은 약속도 잘 지키는데, 나는 엄마랑 한 약속들을 잘 못 지켜서 미안해요."라는 문자를 보냈었다.


그 모든 게 내 탓이었다.

진실로 꼭 내 탓만이 아니었더라도,

나는 엄마이기에,

나만 알아차릴 정도로 미미하지만, 내 눈에 자꾸만 밟히는 아이의 틱이 내 탓인 것만 같아 미안하다.


그렇게 틱이 내 눈에 보이는 날에는 혼자 인터넷으로 검색하다가 무서워지기도 하고,

치료를 받으러 가야 하나, 어디가 좋은가 알아보다가,

심하면 주변에서 알아채거나 학교에서도 언질을 줄 텐데 그게 아니니,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지 말자고 다짐을 하고,

사춘기가 지나 뇌의 어떤 부분이 발달하면 자연스레 사라지는 현상이니, 실제로 초등학교에서는 많이 관찰되지만 중학교에서는 관찰되지 않으니, 조급해하지 말고 기다리자고 마음을 가라앉히다 보면,

또 아이는 안정을 되찾는다.


그리고 이번 겨울 방학,

책상 자체를 책장과 떼어내고, 책장이 아무리 어질러져도 잔소리를 하지 않았으며,

(아이가 조금 더 성장해서 책상만큼은 스스로 나름의 정리 체계를 가지고 정리를 하고 있기도 해서 잔소리할 일이 줄기도 했다.)

동네 아이들이 영, 수 학원에 별별 학원을 다 다니는 마당에, "심심해 심심해" 노래를 부르는 심심한 초딩으로 살게 두었으며,

그래도 눈에 좋지 않은 미디어는 최대한 줄이고,

대신 함께 뒹굴거리고, 많이 안아주는, 함께 심심한 게으른 엄마로 살고 있다.

아이는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다.


그러다 어쩌면 나는 또 예민하게 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또 미안하다고 자는 아이를 바라보며 혼자 울지도 모르겠다.

나도 사람이라 이제 그러지 않으리라는 장담은 못하겠다.

서툰 엄마라서 미안하다고, 나는 어쩌면, 계속 미안한 인생을 살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에 나의 엄마가 내게 이런 말을 했기 때문이다.


"엄마가, 너네 맛있는 거 먹이고, 좋은 옷 사 입힌다고, 일을 했는데, 혹시 그러면서 너네한테 신경을 못 써준 부분이 있을 까봐, 그게 또 미안하지."

"엄마가 너랑 같이 살아서, 네가 혹시나 좋은 사람 만나 결혼 할라 쳐도, 장모 모시고 살아야 된다는 생각에 남자들이 안 좋아하고 그럴까 봐, 네 앞길 내가 막는 걸까 봐 그게 또 미안하지."


"엄마, 엄마가 그때 그렇게 일했으니까, 내가 좋은 거 먹고, 남들 해 보는 거 다 해보고 살았지~~ 그때는 그게 엄마의 최선이었잖아~~"

"엄마, 나는 결혼 생각은 꿈에도 없어. 다 유치하고 다 싫어."

라고 진심을 얘기했지만, 엄마는 그래도 미안하다 했다.


엄마라는 존재는 왜 항상 자식에게 미안한지 모르겠다.

다 해줘 놓고 못해줬다고 미안해한다.

그게 당시의 최선이었으면서도, 미안하다고 한다.

나는 안 그럴 줄 알았는데, 나도 그러고 있다.


나는 꼬꼬부랑 할머니가 되어서도 지금 우리 엄마처럼 미안해하고 있을 것이다.

이혼이 그때 당시의 최선이었지만, 그 최선으로 인해 아이가 아파했으니 미안한 일이다.

그 잔소리가 그때 당시 나의 최선(이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나의 '인간적 면모' 정도가 적당하겠다.)이었지만, 그로 인해 아이가 불안했으니 미안한 일이다.

미래의 나의 선택이 나의 최선이겠지만, 아이도 그것이 나의 최선이라는 것을 알고 감사해하겠지만, 나는 엄마이기에, 미안한 일이 될 것이다.


나만의 아무튼 돌싱은,

돌싱하고 전혀 상관이 없지만,

또 아이가 있는 돌싱이기에 상관이 있기도 한 감정.


엄마가 네 엄마라서 미안하다는 것.

그럼에도,

네가 내 딸이라 감사하고 행복하다는 것.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