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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토해버리고 싶은 그 초콜릿

이름이 뭐 레더라?

by 문득 달

오늘은 해피 밸런타인데이!


사랑하는 '남자에게 여자가' 달콤한 초콜릿을 주며 사랑을 고백하는 날.

왜 그때는 '여자가 남자에게' 주는 날이란 걸 까맣게 잊었을까.



2023년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


전남편이 커다란 곰돌이 초콜릿 두 개를 들고 들어 왔다.

하나는 내꺼, 하나는 우리집 동글이 것이란다.

하나에 2만 7천 원이라는 초콜릿.


친정아빠가 얼마 전 항암치료를 시작하신 터라

정신없던 우리 가족은 "아! 오늘이 밸런타인데이구나!"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이 비싼걸 왜 사 왔냐", "그래도 맛있다!" 해가며

야금야금 조금씩 곰돌이를 해체(?)하여 맛있게 부스러기까지 다 긁어모아 먹고 나서


"여보, 그 초콜릿 맛있더라. 벌써 그 큰걸 다 먹었어!!"

해맑게 웃으며 좋아하는 내게 전남편은 웃으며 말했다.

"또 사줄게. 많이 먹어."


이제와 생각해 보면.

전남편이 그 비싼 초콜릿을 두 개나 샀을 리 없다.

2번 그녀의 수작(?)이다

하나는 전남편의 것, 하나는 우리집 글이의 것.

그걸.

속없이 해맑게 웃으며 쳐. 먹고 있었다. 내가.

그땐 둘이 정식으로 사귀지는 않았으니 어떤 의도로 그 초콜릿을 줬는지는 모른다.

'그냥 직장동료에게', '직장 사수에게', '감사의 의미', '그냥 예의' 정도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2번 그녀가 준 그 초콜릿을 뱃속에서 다 끄집어내어 토해내고 싶은 것이다


젠장.

정말이지.

다 토해버리고 싶다.



1년 전, 밸런타인데이에 쓴 일기이다.


지금 읽어보니,

전남편의 세 번째 외도가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또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초콜릿을 2번 그녀가 주었다고 확신하는 저 태도도 볼품없다.

증거 불충분.

그 어디에도 2번 그녀가 주었다는 증거가 없는데도 나는 '억측'을 했다.

그건 그저 '촉'일뿐인데 말이다.

물론 진짜로 2번 그녀가 전남편에게 의미 있게, 혹은 별 의미 없게, 주었을지도 모른다.

한편으론,

전남편이 자신의 세 번째 외도가 미안해서 챙긴 '일말의 양심'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중요한 건,

1년 전에는 다 토해버리고 싶었던 그 초콜릿이 지금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초콜릿의 출처가 어디였든,

어떤 의미였든,

나는 당시에 맛있게 초콜릿을 먹었다는 것.

그게 중요하다.

맛있게 먹어놓고 다 토해버리고 싶다니.

내 뱃속에 들어간 해체된 곰돌이 머리가, 몸통이, 손이, 발이, 의미 없어지잖아 그건.


신기한 건,

그런 걸 소재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촌스러워 그것이 레더라 초콜릿인지도,

그 쇼핑백의 그것을 '레더라'라고 부르는지도,

최근에야 알았는데,

'이 글의 부제를 이렇게 해야겠다!' 하며 낄낄대고 있다.


이름이 뭐 '레더라'?


나는 지금 내가 좋아하는 '페레레로쉐'를 한 입 가득 넣고 오물거리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레더라든 페레레든 무엇이든

이제는 안 토할 수 있으니

달콤한 초콜릿같은 인생이기를.

문득 달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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