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의미

무의미함의 늪에 빠져 있는 이들에게

by ㅡ의 취향

우즈의 곡이다.

이 삶의 의미를 못 찾겠는 느낌, 왜 음악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노는 것도 재미도 없고, 마침 사람들도 만나기 싫고 할 때 그럴 때 일기처럼 쓰던 것들이 가사가 되어서 만든 곡이에요.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겠고 뭘 위해 사는 건지도 모르겠고 어딘가 허무하고, 회의감이 들다 무기력함에 빠지기 쉽다. 나는 평소에 비관주의를 가장 경계하는 편인데 허무주의도 이에 못지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두 개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 자신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지게 된다면 이것은 또 타인에 대한 의심과 불신으로 이어지게 된다. 자신의 심지가 곧고 단단하지 않으면 스스로의 방어기제가 작용하여 타인에게 공격적으로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허무주의에 빠지면 정신적 가치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기고, 실존하는 것은 육체와 살고자 하는 의욕뿐이라 믿는다. 그리하여 육체적 욕망의 극대화를 추구하며 살아가게 된다. 이들은 또한 소유, 욕망의 형식을 띠는데 에리히프롬의 소유냐 존재냐에 언급되었듯 소유론적 실존방식은 대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오히려 스스로를 그 대상의 지배하에 두는 행위라고 말한다. 온전한 행복과 자유에 이르기 어려운 것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우리는 다양한 이유로 우리에 대한 불신과, 부정적인 단언을 마주하게 된다. 가끔은 어리다는 이유로, 또는 미숙하다는 이유로. 그 순간들에 나 스스로가 날 믿지 못한다면 정말로 무너질지도 모른다. 숱하게 맞서야 하는 불신들 앞에서 나조차 날 의심하기 시작한다면 그대로 절망에 빠질 것이다.


약점은 자신이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스스로 이겨내면 그만이라는 말을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다. 나는 흔들림 없는 사람이고 싶다. 사람들이 약점이라고 말하는 것들을 나만은 약점이라 생각 안 하면 되는 일이고, 그 말들에 휘둘리지 않으면 되는 것이니 난 꼭 흔들림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낙관적 허무주의

우리는 이 광활한 우주에서 아주 작고 작은 존재다. 삶은 의미가 없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 스스로 의미를 창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우리는 무의미한 백지상태의 삶을 스스로 채워나갈 수 있다는 것 아닐까. 더 나은 삶을 위해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하는 것인데 이 행위가 더 스트레스가 되면 안 된다.


무의미함은 파고들수록 끝도 없는 것이고 어쩌면 명쾌한 답을 찾는 것은 평생을 걸쳐도 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그러니 그저 우린 무의미함을 해결해야 할 문제로 받아들이기보단 무의미함 속에 자유로운 내가 의미를 만들어가자고 호기롭게 다짐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