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아이유의 곡이다.
사랑에는 충분히 승산이 있다
사랑하기를 방해하는 세상에 끝까지 사랑하려 애쓰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요즘 사람들은 남들에게 관심은 참 많은데 그렇다고 그들을 향해 관대한 태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타인을 비난하는 데 스스럼이 없다. 결국 그 대상이 무너져 내릴 때까지 맹목적으로 비난을 퍼붓고는, 그 비난의 대상이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하고 나서야 나는 아니었다며 누가 그랬냐는 듯 안타까워한다. 마녀사냥이 끝난 뒤 여론이 바뀌는 모습은 보기 역할 정도다. 그리곤 금세 잊어버린다. 미디어가 발달한 만큼 자신의 말 한마디가 생각보다 훨씬 큰 파장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고 언론은 좀 더 책임감 있는, 진중한 보도를 하기를 개인적으로 소망한다.
가장 큰 골칫거리는 자극적인 것에 관심이 많지만 그에 대한 사실확인을 할 정도로 비판적인 태도를 갖추지 못했다는 점과 혹 허위사실이었다고 한들 그에 대한 정정보도에는 같은 정도의 관심이 쏠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미지가 중요한 연예인들에 대한 거짓폭로가 만연하고 여전히 진위여부를 알지 못하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누군가가 열심히 쌓아온 커리어를 이토록 쉽고, 또 무책임하게 무너뜨리려 한다니 이것은 얼마나 이기적인 생각인가
내가 무심코 한 클릭이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아세울 수 있다는 사실을 늘 잊지 말자고 다짐한다. 대혐오의 시대에서, 돈 한 푼 들지 않는 듣기 좋은 말, 살가운 말 건네는 데 인색해지지 말자고. 사랑만 하기도 모자란 시간에 누군가를 미워하지 말자고.
세상에서 당연하지 않은 호의가 넘쳐나길 기대하진 않지만, 적어도 사람들 간에 당연하게 지켜져야 할 예의조차 지켜지지 않는다면 그 끝은 절망적일 것이다. 우리는 인터넷의 발달로 시공간을 넘어선 소통을 강조하지만, 오히려 사람들과의 단절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사실은 나의 어린 시절과 현 초등학생들만 봐도 알 수 있다. 나는 어려서 놀이터에서 시간 되는 애들끼리 다 같이 놀았는데 요즘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휴대폰 게임을 한다. 나에게 아직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데 이것을 향유하지 못하고, 이 기억을 가질 수 없다는 것,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것보다 핸드폰게임을 재밌어하는 그 감각이 너무 안타깝다.
기술을 발전을 통해 역설적으로 퇴화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며 나는 기술이 그만 빨라지기를 바란다. 더 멀어지지 않기를 , 인터넷과 ai들이 우리를 기어코 삼키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세상에 만연한 차별과 단절 앞에서 사랑이란 가치를 저버리지 않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