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호반길

by 김인주


춘천 호반길

김인주


춘천은 봄내다. 소양은 빛나는 볕, 밝은 양지이다. 나는 딸 이름으로 소연, 밝음을 잇는다, 햇빛 불러 이어 간다로 지었다. 춘천의 이미지를 이었다. 호반의 도시 하면 춘천이다. 호수 주변에 생긴 춘천이다. 수력발전소와 더불어 춘천호, 소양호, 의암호 호반의 봄내다.

우리 집은 원래 신북면 신동 삼거리 담배가게 옆골목을 지나 앞집에는 영희, 옆집에는 은자, 뒷집에는 춘화네 집의 가운데 집이었다. 모두 같은 학년 동기들이었다. 여동생과 내가 반반씩 돈을 내서 사우동 현대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사우동 아파트를 나와 신매대교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아직 추운 2월, 아침 늦은 시간 10시다. 다리 오른쪽 아래에 보이는 위도에는 추억이 많다. 울창하던 숲과 나무들이 모두 베어지고 헹하게 정리되었다. 위도에서 텐트 치고 야영도 하고 야유회도 많이 왔었다.

야전을 가운데 땅바닥에 두고 우리는 원형을 만들며 일컬어 고고춤을 추었다. 다리를 앞으로 번갈아 가며 올렸다 내렸다 한다. 마른땅의 흑먼지가 풀풀 날렸다. 지금까지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 프라우드 메리가 최고 음량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우리의 어원인 울, 울타리 만들기를 좋아한다. 울타리는 나와 남의 경계선이고 아군과 적군을 가르는 이분법이다. 역내자와 역외자. 한국인은 역내자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모임 만들기의 천재들이다.

이제 2킬로도 못 걸었는데, 벌써 몸이 덥다. 의암호를 돌고 춘천시를 지나 집까지 돌아오는데 거의 30킬로쯤은 될 것이다. 마음을 굳게 먹었다. 한 번은 일주해야지 하고 평소 생각했던 고향길이다. 도로에는 가끔 차가 지나갔지만 인도를 걷는 사람은 만나기 힘들었다.

도중에 힘들면 택시 타지 하고 위안을 하면서 편도 일 차선 도로의 보도를 혼자 걷는다. 신매리, 금산을 지나고, 박사마을도 지난다. 길 옆에 있는 박사마을 선양탑에 아는 이름들이 새겨 있어 반갑다.

지나는 차, 가끔씩 만나는 사람들... 나는 배낭 메고 빨간 방한복에 선글라스, 모자도 쓰고 단단히 무장을 했다. 내가 중고등학교, 대학교 다닐 때 그 이후 한참 후에도 어머니는 이 서면길을 걸었다. 옷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행상이다. 나는 조금이라도 그 길을 걸어 보자고 마음먹었었다. 어머니는 식구들 굶게 하지 않으려고, 먹고살기 위해 이 마을 저 마을을 옮겨 다녀야 했다. 서면 장사 가시는 날 나는 용산리 나루터로 마중을 나가 곤 했다.

덕두원교를 지난다. 이곳 상류 마을에는 대기업 임원 출신 친구가 농사지으며 산다. 그러나 그는 오늘 집에 없다. 길 옆 식당은 문을 닫았다. 굽이굽이 의암호 호수를 왼쪽으로 끼고도는 길이다.

편도 1차선 도로이지만 나는 잘 놓인 자전거 전용도로를 걷고 있다. 왼쪽 호수 건너엔 춘천시 중도와 붕어섬이 있다. 물은 짙푸른 색으로 맑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하고, 공기는 약간 차면서 그지없이 상쾌하다. 오른쪽으로는 삼악산 능선이 가파르다. 이곳의 풍경은 가히 내가 본 경치 중에 최고 절경이다.
1946년 시작된 춘마, 춘천마라톤은 의암호 주변을 시월 가을 배경으로 인간과 자연의 합치된 극치의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낸다.


북한강


북한강은
금감산에서 잉태, 화천 파로호에 머물다 떠나
용산 신동 사우동을 지나

의암호에서 소양강을 만나고
청평호에서 홍천강을 만나고

태백의 검룡소를 나와 휘감아 이은 남한강을

버드나무 많은 양평 양수리
두 물머리에서 만나

한강이 되어 서울을 만들다

온갖 애환을 품고 껴안고 흘러 흘러
어미의 품 서해로 만나다

강변의 하얀색 차돌들을 부딪치고
물장구치고
물수제비 뜨며
바람과 태양을 벗으로
미지의 세상을 꿈꾸는 아이는

아침에 강 건너 서면에 가신 어머니를
어스름한 저녁까지 물거미 날 때까지

용산리 나루터 강언덕에서
아직 기다리고 있다오



의암댐이 북한강 물길을 가로막은 의암호 주변은 세계 최고의 절경이다. 고성 세계 잼보리 대회 때 이 길을 지난 세계인들이 파라다이스라고 감탄한 풍경이다. 신연교를 가운데 두고 오른쪽으로 깎아지른 삼악산, 의암호수가 만든 경치에 발바닥 통증도 잊고 연실 두리번거리고 감탄하며 걷는다.

드디어 오늘 일정의 반환점인 신연교를 건넌다. 의암호 인어상, 김유정문인비를 지난다. 예전에 이 길은 가평, 청평, 서울로 가는 완행버스 길이었다. 한쪽은 급한 산비탈이라 피암터널이 생기고, 또 한쪽은 깊은 수심으로 빠지는 절벽이다.

송암레포츠타운에 이르니 두 무릎에 통증이 오기 시작한다. 강원체고 학생들이 줄 맞추어 뛰고 있다. 코치선생님은 뒤에서 자전거를 타고 간다.

이미 20킬로 이상 걸은 무릎이 잘 굽었다 펴지지가 않는다. 아직 갈 길은 멀다. 버스 정류장도 있고 택시도 뜸하지 않게 다닌다. 시간은 세시에 다가오는데 아직 점심을 못 먹었다. 대신 배낭에 있는 초콜릿 등으로 허기를 달래고 있다. 버스정류장에 앉아 귤을 먹는다. 쉬어 가는 일이 점점 잦아진다.

드디어, 20대 때 자주 들리던 공지천 부근에 다다른다. 락킹 하우스는 진짜 자주 왔다. 에티오피아커피집은 예전과 똑같다. 춘천을 방문하고 커피 생두를 선물했던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를 생각한다. 황제가 탄 헬리콥터가 춘고 운동장에 내렸었다.

공원은 많이 다듬어졌다. 이외수 선배 시도 눈에 띈다. 부분 부분 벤치도 늘고 나무도 심고 볼거리를 많이 갖추었다. 중학교 때 공지천 둑길을 뛰면서 돌기도 했고, 고등학교 때는 자전거를 탔고, 대학교 때는 보트도 탔다. 고3 때 친구 누나 결혼식 피로연에서 막걸리 먹고 공지천에 와서 힘들었던 기억도 난다.

드디어, 춘천역을 지나고, 등뒤로 일몰 낙조의 기운이 드리우는 근화동 소양강 2교에 이른다. 소양강처녀상이 언제나 근사하고 멋지다. 억척스러운 강인한 여인상이다. 오른쪽은 봉의산이다. 이곳은 소양강이 북한강과 만나는 합류지점이다. 서면에서 오는 배들이 이곳에 정박하곤 했다. 특히 늦가을 김장 때면 배 타고 건너온 배추 실은 리어카들로 붐비고, 장날 팔려 가는 소들이 하역되는 나루터이기도 하였다.

이제 다리 통증은 극에 이르렀다. 발가락에는 물집도 생겼다. 무릎 뒤 근육 통증이 심해서 잘 걸어지지가 않는다. 한발 한발 천천히 소양 2교를 건넌다. 소양중학교, 소양고등학교 교문 앞을 지난다.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다. 아~~, 이 성취감! 성공보다 성취감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오늘 혼자만의 큰 의식을 치렀다. 나는 오늘 많은 생각을 했고, 마음을 많이 비웠고, 많이 단순해졌고, 시속 4킬로 정도로 고향 봄내의 자연경관을 몸으로 호흡했다.



고향 춘천


고향은
그리움이네 마르지 않은 샘물

고향은
떠돌다 아프면 머리 쉬일 곳 마음 놓을 곳

고향은
개울가에서 빨래하는 어머니 기다리며
물자락질 하는 아이들 잔치

고향은
작대기 들고 논두렁길 헤집고
솔방울 던지며 뛰어 오르고 내리는 축제

고향은
언제나 우리편 내편 되어 주는
코 흘리며 옥수수 감자 불 놓아 나누던 친구

고향은
인생의 종점에서 내릴 때 몸은 버려도
마음 혼은 따뜻한 봄 냇가 양지 바른 곳에
고이 모셔 웃고 영생하는 혼불이다


(20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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