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들은 성묘가 되면 거의 울지 않는다. 물론 유튜브 스타 마일로처럼 이례적으로 수다스러운 고양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얼마나 신기하면 유튜브 스타가 되었겠나. (마일로 : 아비시니앙. 집사가 물어보면 꼬박꼬박 대꾸를 하는 것이 천상 대화한다는 착각을 주는 녀석. 화장실 꽁냥꽁냥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철부지 아이들이었을 때 말이 많던 사람도 사춘기를 지나면서 과묵한 어른이 되는 것처럼, 고양이들도 병아리처럼 시도때도 없이 삑삑 소리로 울던 시간은 잠시, 그 후부터는 필요한 것을 아무리 기다려도 챙겨주지 않는 무능무심한 집사가 아닌 한 자기 고양이가 우는 소리를 자주 듣지는 못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 아이들이 꽤나 말이 많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으로 캔 습식 간식이나 닭가슴살, 가끔은 까망이 취향을 따라 육포간식류를 살짝 따뜻하게 데워 주면 맛있게 먹고나서 방으로 들어가서 (이율배반적이게도) 뭔가 불만스럽다는 듯 우렁찬 소리로 "냐아~냐아~"하고 제법 오래 우는 것이다. .
여러 전문 수의사 선생님들의 채널을 돌아다닌 덕분에 고양이들의 울음소리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분류할 정보는 갖추고 있는데도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었다. 밥은 방금 맛있게 잡쉈고, 물이 비었나 보면 깨끗하게 채워져 있고, 화장실이 문제가 있나 보면 그도 아니고, 심심해 그러는가 싶어 카샤카샤 붕붕(낚시 놀이)을 날려보면 그도 본체만체. 대체 뭐가 문제인지를 알 수가 없어 불만스러운 묘르신의 얼굴을 붙들고 코를 맞대면 살짝 눈을 깔면서 자리를 벗어나려 한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가는 나이, 그래도 얼굴은 여전히 베이비 페이스.
1. 삑삑 쉴 새 없이 울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꽤나 중후하고 파워풀한 목소리로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만 우는 노묘님들의 가장 확실한 신호는 똥치우란 메시지다. 큼직한 맛동산을 만들고 나면 어김없이 큰 소리로 우렁차게 신호를 준다.
2. 그 다음은 텐트를 쳐달라는 요청. 대부분은 신호하기 전에 알아서 해주지만 여느 때보다 설치가 늦으면 특히 글램핑중독자 까망이가 재촉한다. 망설이는 눈에 짤막한 외울음. 극내향형인 우리집 노묘들은 항상 몸을 숨길 곳이 집안에 두 세곳 이상 필요하다. 그래서 늘 널찍하고 푹신한 이불텐트는 사시사철 필수. 이불텐트의 규모상 캠핑보단 글램핑에 가깝다.
3. 토한 곳이 있을 때 알려주느라 운다. 약간 나지막하고 그 주변에서 미안한 표정으로 소극적 울음소리를 낸다. 헤어볼과 노란 구토액이 섞여 나오는 현상이 규칙적으로 있기 마련인데 기겁할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매번 잘 살펴보기는 해야한다. 구토물이 정상적일 때와 그렇지 않을 때, 그리고 빈도가 모두 체크 대상.
4. 손길과 빗질이 고플 때 높게 짧게 자주 운다. 빨리 날 좀 이뻐해줘라....이 때 특히 서러운 목소리가 들린다.
5. 같이 잡시다. 체온이 필요할 때 제법 짜증내며 낮게 길게 운다. 특히 베개에 똥고를 대고 앉아서 책상에서 내려오란 신호를 보내는 노랑이의 모습은 정말....남편보다 이 녀석이 내 영혼의 짝꿍인가!!
고양이는 성묘가 된 후엔 자기들끼리 어지간해선 울음소리로 소통하지 않는다니 분명 이건 다 나한테 하는 소리다. 수다스런 묘르신들의 울음 언어체계를 더 채워나갈 수 있어야할텐데. 대학 가기(=20년 살기)로 약속은 했지만, 건강한 나날이 언제 멈출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갑자기 우울해진다. 냥님들 병원비 저축도 아직 많이 못했고 내 노후준비는 더구나 엄두도 안난다. 뭘 해야 돈벼락을 맞을까. 나만 두고 보면 꽤 나중에 주택연금받아 근근히 살아도 부족할 건 없을것 같다. 그러나 고양이들에게 로얄캐닌 처방식을 계속 먹이려면 좀 더 경제활동은 해야한다. 관계성이 필요해 일을 한다고 하지만 솔직히 난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은 극 내향형. 고양이들이 분명 날 닮은게다.
하지만 집에서 우리는 많은 대화를 하고 말도 많다. 일이 인생의 큰 정체성을 가진 소위 성공한 인생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행복한 것 같다. 집에 있는 시간을 위해 "도비"로 말포이네 집에 8시간 묶여 사는 걸 대체할 적성과 능력에 부합하며 페이도 그럭저럭 먹고 살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매일 고양이와 수다 떨며 살고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