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uu Aug 27. 2023

노묘의 시간

16화. 물 마시게 하는 요령.

  고양이와 함께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느 시점에서 자기 고양이의 물기호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잘 마시는 경우 그 고민이 좀 늦게 시작되고 원래 까다로운 친구들을 만나면 조금 일찍 시작한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까… 결국 모든 고양이 동거인들은 자기 고양이가 물을 마시는지 안 마시는지, 충분한 양은 마시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상당한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초기부터 고양이들의 이집트 기원설이 내 신뢰를 받았던 이유도 우리 노묘님들의 어린 시절 물에 대한 히스테리와 햇살에 대한 끝없는 선호에 기인했다. 나중에 고양이라도 물을 좋아하는 친구들도 간혹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내 고양이로 낙점된 아이들은 보통의 고양이들이 그렇듯 아주 물을 싫어했다.

  작은 아기 고양이일 때야 한 손에 두 마리도 올릴 수 있는 사이즈라 얼굴에만 물이 닿지 않게만 하면 그 시간은 그다지 고통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제법 다리 근육에 힘이 붙고 덩치가 한 손으로 한 마리 제어하는 게 간신히 이뤄지는 3~5개월 차에 접어들면서 목욕시킬 때마다 전쟁이 따로 없었다. 결국 두 마리가 함께 목욕하는 시기는 끝나고 그 시점부터 한 마리씩 목욕탕으로 이끌 수밖에 없었다. 한 녀석이 들어가 힘든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내는 그 소리는 밖에 남아있는 녀석에게 두려운 시간을 선사했기에 처음 들어가는 고양이 쪽이 유리한 입장이라 돌아가며 한 번씩 먼저 들어가는 식으로 순번을 정했고 매번 목욕은 녀석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게릴라 작전처럼 실행되어야 했다. 이후 고양이들이 2살의 한창 힘 좋은 성년기에 접어들면 -중성화를 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덩치와 힘의 차이가 존재하는- 노랑이가 15분가량 두려움에 떨며 힘주고 숨어버리면 끌어내는 것부터 진 빠지는 일이었기에 늘 불안의 시간은 까망이의 몫이 되었다.

  음수에 대한 얘기를 하려다 물에 대한 고양이들의 두려움을 너무 길게 설명해 돌아온 감은 있지만 고양이에게 물은 생존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동시에 극혐요소이기도 하다. 고양이들의 물취향은 그 물을 담는 그릇 취향이라는 것도 요즘은 상식이지만 그릇 취향은 같은 고양이라도  매번 변하기 마련이다. 어느 시점까지 사기그릇에 담긴 물을 제일 좋아하던 녀석이 어느 날부터는 스테인리스 스틸 그릇을, 어느 날부터는 투명 유리그릇에 담긴 물만 선호하기도 한다. 고양이들이 가진 재미있는 면은 루틴 하면서도 루틴 하지 않은 기호성의 존재라는 점에서 나오곤 한다.

 

   아주 아기고양이 시절은 기억조차 안 나는지라 최근 5년 이내만 들춰보자면 지금까지 우리 고양이들의 물그릇 여정은 전용 정수기를 포함해서 십 여가지 정도. 기본 사기그릇도 수염이 간신히 닿을 듯 말듯한 지름의 하얀 백자기가 가장 오래 지속적인 선택을 받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우리 노묘님들의 경우 수염이 닿는 것에 대해서는 그렇게 민감하지 않은 것 같다. 수염에 전혀 닿지 않을, 지름이 훨씬 더 큰 그릇이라고 더 인기 있는 것도 아니었다. 유리그릇은 꾸준히 선호되지만 스테인리스 그릇은 희한하게도 한동안 좋아하는 듯하다가 그보다 아주 오래 외면당했다. 그래서 최근 정착한 형태는 결국 밥공기 크기의 사기그릇 물그릇과 유리그릇 두 가지이다. 한 여름, 너무 더운 집에서 물이 미지근해지는 것이 걱정되어 꽁꽁 얼린 스테인리스 물그릇을 출근하면서 내놓고 나가면 한두 시간 후 완전히 녹고 가장 더운 시간대까지 약간의 시원함을 유지한다. 그 덕분에 외면받던 스테인리스 물그릇은 한 여름에만 잠깐 애용되곤 했다.  

    전동정수기는 처음 등장 시점 낯선 물건에 대한 고양이들의 본능적인 경계심을 자극했지만 하루가 지나지 않아 친숙해졌다. 희한한 것은 전동모터를 아무리 깨끗이 관리해도 내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모터를 통과한 물이 그냥 그릇에 담긴 물보다 쉽게 끈적해지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부주의한 자들 중 비싼 도자기 재질 정수기를 구입하면 매일 씻지 않아도 된다고 착각을 한 것인지 자주 위생관리를 하지 않아서 목불인견의 더러운 모터상태로 물을 공급하거나 필터 사용을 하는 정수기를 사고도 필터를 갈지 않아 오히려 물상태를 더럽게 만드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 모터는 분리 청소가 기본인데 그걸 한 번도 안 하고 계속 쓰는 사람들은 차라리 정수기를 사용하지 말았으면 한다. 고양이들이 말도 못 하고 얼마나 불쌍하게 이상한 냄새가 나는 물을 견디고 있는지…. 안 마시는 것으로서 시위를 하고 있는데 그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동거인들이 꽤 있을지 모른다. 나는 도자기 재질에 적당한 물용량, 실리콘 수출구, 청소가 용이한 모터 등 고양이에 대한 이해 만렙인 개발자가 와디즈 펀딩을 통해 몇 년간 안정적으로 제품화에 성공한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 이상으로 만족스러운 제품은 찾기 어려워 아껴 사용하는 중이다. 모터의 경우 한 번 죽어버린 것을 손재주 좋은 남편 덕에 고쳐 사용하는 중.  

  나의 고양님들은 지루함을 견디는데 일가견이 있지만 물그릇과  습식사료에서 만큼은 변덕이 많아서 어제까지 잘 쓰고 잘 먹던 것도 오늘은 외면하는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고 다음날 다시 사용해도 놀랄 일도 아니다. 그래서 정수기는 다른 물그릇들에 대한 선호가 사그라들고 오래 모터를 돌려도 비교적 열이 발생하지 않는 겨울에만 나오고 있는 중이다.

  

  초보 동거인일 때는 사료와 물그릇이 나란히 배치되는 그런 밥그릇 세트를 사서 폼 나게 인테리어와 잘 어우러지는 공간을 꿈 꾸기도 하였다. 요즘은 많은 수의사님들이 그렇게 하지 말라고 조언해서 밥그릇 물그릇을 멀리 떨어뜨려놓는 게 일반적이지만 내가 처음 고양이들을 만나 키우던 16년 전에는 그런 섬세한 점까지 살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경험적으로 고양이 사료그릇과 물그릇이 가까우면 물그릇에 사료찌꺼기들이 녹아져 물을 비릿하고 빨리 더럽게 만든다는 것을 아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나쁘지 않은 관찰력 덕분에  고양이들이 건사료를 먹게 된 3개월 차 끝물부터 물그릇과 밥그릇은 따로 배치되었고 고양이 전용으로 구매한 그릇들은 하등 쓸모없는 천덕꾸러기가 되어 주방 수납공간을 차지해 버렸다. 고양이들은 인테리어 따위엔 관심이 없다. 물그릇도 고양이 전용으로 나온 예쁘장한 작은 그릇보다 적당한 사이즈의 사람이 사용하던 사기 밥그릇이나 파티용 유리그릇들을 더 좋아해서 세트도 아닌 것들을 이리저리 조합하여 높이 맞춰놓은 것을 더 좋아했다. 한동안은 니체 혐오에 빠진 남자 집사의 책 두 권을 겹쳐 비닐로 벽돌처럼 포장해 높이 맞춤용 받침대로 사용하기도 했는데 혐오하는 책이 사랑하는 고양이들의 받침대로 있는 것조차 짜증스러웠던지 어느 날 사라져 있었다. 고양이들과 살면 너저분함의 최적 엔트로피 값이란 게 존재해서 집사가 원하는 모델하우스같이 너무 깨끗한 집은 불가능. 그렇다고 너무 너저분해도 안된다. 고양이들은 선택적으로 결벽증이 있어서 자기 화장실과 물그릇의 위생상태는 상당히 까다롭고 그릇의 생김새와 높이에 대한 선호도 꽤 분명한 편. 다만 그 선호가 사람 눈에 예쁜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다. 소재를 중시하는 녀석들이라 그릇, 특히 스테인리스 그릇은 사람들이 사용할 때도 좋은 편에 속하는 316 수준은 되어야 오래오래 사용해 주었다. 304 스테인리스에 담겼던 물은 냄새를 한참 맡아보더니 진저리를 치면서 훽~ 고개를 돌리고 돌아가는 것을 본 적도 있다. 나라고 처음부터 스테인리스 등급을 알았겠나. 왜 어떤 스테인리스 그릇은 좋아하고 어떤 그릇은 외면하는지 찾다 보니 304와 316의 차이를 알게 되었을 뿐. 짜증스러울만치 좋은 것 나쁜 것을 구분할 줄 아는 놈들인 것이다.


  고양이 동거인의 삶에서 아이들이 동거인 걱정 시키지 않을 정도로 물을 잘 마시면 사실 많은 면에서 큰 시름을 덜은 것으로까지 생각할 수 있다. 오죽하면 아이가 흐르는 물만 먹는다고 수돗물을 조금 흘려놓고 다니는 집사까지 있을까. 건강한 맛동산과 감자, 고구마를 캘 수 있는 날들을 더 연장하려면 제일 먼저 내 고양이의 생활에서 살펴야 할 것은 물제공 상태이다. 아이들이 싫어하지 않도록, 깨끗하고 마시고 싶은 상태로 유지하는 요령이야 말로 고양이를 병원에서 괴롭히지 않으면서 무탈하게 오래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늘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생각한다.


The end of this episode.


  


  

작가의 이전글 노묘의 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