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uu Nov 16. 2021

노묘의 시간

3화. 같이 늙어 간다.

  '유유상종'이란 말이 어릴 때는 좀 고깝게 느껴진 적도 있었던 것 같다. 좋은(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공부 잘하는) 친구 사귀어야 너도 그 부류에 끼일 수 있다는 압력의 일환으로 "유유상종이지!"란 식의 말을 던지는 어른들에 대해 어린 눈에도 '그러는 당신은 그 좋은 사람일까?'라는 반감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나이가 들면서 유유상종을 좀 더 가치중립적으로 긍정하게 되었다. 그러려고 하는 의도나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고양이들과 살다 보니 긴 관계를 이어가는 친구들은 결국 동물을 좋아하거나 같은 집사처지의 사람들이 많아져 있다. 가장 자주 보고 집에도 내왕하는 친구들은 모두 어쩌다가 묘연이 이어져 고양이들을 맡아 키우게 된 사람들. 한 분은 성미산 학교 초창기 멤버로 마포 성산동 일대의 길고양이 영역묘들의 사료 맛집 겸 틈틈이 들르는 공용화장실까지 제공하다가, 그중 집으로 찾아들어오는 아이들의 엄마가 되었다.  다른 한 친구도 나와 같은 회사 근무시절, 내가 '어쩌다 집사'의 길로 들어선 1년 후 본부 근처에서 아기 고양이 시절부터 호랑이의 기운이 예사롭지 않던 코숏 고등어 코트의 남아를 입양했고 이어서 몇 년 후 성당 근처 겨울이 다가오던 어느 날 나무를 타던, 유난히 부은 얼굴이 걱정스러웠던 코숏 흰털 노랑 털이 듬성듬성한 여아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동생과 올케가 키우다가 아기 생겼다며 어머니 집에 기약도 없이 맡기고 간 아숏 한 마리까지 총 세 마리의 부양자가 되어 있다. 어렵게 생긴 아이이니 조심하는 마음은 십분 이해하면서도 하루아침에 남의 집 천덕꾸러기가 된 품종묘의 팔자에 세 사람은 모일 때마다 안타까워하며 그나마 보호자가 되어줄 사람이 있어 다행이란 생각, 그러면서도 자기 마음에 위로 얻자고 긴 일생을 고려치 않고 쇼핑하듯 아이들을 들인 사람의 부주의함과 배려 없음에 살짝 비난의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대상이 동생 부부임에도, 친구는 가장 드러내 놓고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저렇게 얌전하고 순하고 똑똑한 고양이를, 확실히 증명되지도 않은 톡소플라스마 포자가 염려된다고 자기들은 못 키운다면서 엄마 집에 떠맡기는 게 말이 되냐며 속상해했다. (친구 어머니는 사실 고양이를 길러본 일도 없고 별로 마뜩하게 여기는 분도 아니었으니 결국 고양이 집사인 누나더러 키우란 말이었던 셈이다.)


  나는 처음부터 두 마리 아가들 외에 다른 묘연을 확장하는데 회의적이었다. 두 마리 모두 건강하게 별 탈 없이 10여 년을 살아왔지만 그래도 내 마음 한편은 두 녀석들의 앞발 기형을 신경 써 온 듯하다. 사실 아가들 어린 시절 다른 고양이와의 첫 만남이 실패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다른 고양이 하악질에 소심한 노랑이는 정말 당혹스러울 정도로 두려워했다. 까망이는 남매인 노랑이보다는 대범하게 맞서서 목과 꼬리를 부풀리며 조그만 입으로 암팡진 하악질도 했지만 상대 고양이는 이미 다 큰 성묘에 갑작스러운 환경변화 때문이었는지 포악해 질대로 포악해진 상태여서 역부족이었다. 하긴 지금 와 생각하니 낯선 환경에서 예상치 못한 어린 고양이들을 만나 그 녀석도 무서웠던 거였는데, 영역 동물들의 특성을 제대로 모르고 인간 중심으로 생각했던, 부주의하고 모자라는 인간 집사 놈들 탓이었다.


  개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고양이를 기르는 초창기, 고양이도 산책이 필요한 게 아닌가 -절대 필요치 않다는 수의사님들 충고에도 불구하고- 의심해서 한 두 번 시도를 한 적이 있었다. 공원 피크닉에 이동장 째로 들고나가 살짝 문을 열고 조금씩 냄새도 맡고, 색다른 환경에서 우리와 노는 게 가능했으면 했다. 12년 전, 남편과 나는 당연히 지금보다 가난했으니 집도 좁았다. 일하는 동안 고양이들이 집에 갇혀있는 시간이 길면 답답할 거라 여겼기에, 6개월 정도 된 고양이들 코에 바람이라도 넣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기실 전혀 필요 없는 짓이었다. 소음과 다른 환경에 스트레스를 느끼는 고양이들에게는 오히려 공원의 낯선 사람들, 개들, 모든 것이 불쾌한 자극이었다. 자주자주 익숙한 길을 만들어 줄게 아니라면 어쩌다 한 번씩 내 기분에 내키는 대로 바깥을 이동하는 것은 고양이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고 그 후로는 그들이 익숙한 집 안에서 창가에서 편히 바깥 구경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세상에 우리 둘 밖에 없는 것 같다...그치?

  나의 고양이 집사 친구들 중 자신의 첫 고양이와 헤어짐을 경험한 사람은 아직 한 사람, 성산동 터줏대감 언니는 어느 날 펑펑 울며 전화로 내일 출근하기 어렵다는 말을 했다. 가장 오래 키웠던 한 마리가 퇴근해 집에 들어와 보니 혼자 무지개다리를 건너 가버렸던 것이다. 그게 벌써 6~7년 전이었는데 그날 전화받은 나까지 함께 전화를 부여잡고 목놓아 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조금 정신을 차렸을 때는 -나도 고양이 집사인데 개인적 감정으로야 말해 무엇하랴만- 인사 부서장으로서 동료의 반려 동물의 부고에 대해서는 경조휴가 규정은 당연히 없고 따로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어려운 회사 환경이라서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 후 옮긴 IT 디자인 회사에서는 내규 개정 시 반려동물 입양과 사망 시 경조휴가 규정을 만들 수 있었다. MZ세대들에게 고마웠다!)

  다른 집 고양이의 갑작스러운 돌연사에 너무 큰 충격을 받은 나는 매일 아침 나가며 두려움에 떨었다. 아무런 징조도 없이 건강했던 아이들이, 혹시 집에 들어와 보면 나 없이 외롭게 떠나버리는 횡액을 당할까 매일 아침 기도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의 머리에 뽀뽀 세례를 퍼부으며 "사랑해~ 사랑해~ 집에 올 때까지 건강하게 있어야 돼!"라고 말하며 나가곤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노랑이 까망이들은 원래 사랑한단 말을 남발하는 여자 집사가 특히 요즘 스킨십이 진하구먼... 하는 표정으로 시큰둥하게 얼굴을 대주고는 했다.  


  당시만 해도 건강한 장년일 뿐이었던 아이들에게 괜한 나의 공포를 과도하게 투사했던 것인데, 이제 13살을 넘기면서부터 그 걱정은 실체가 있는 걱정이 되어가고 있다. 밤에 잠고대 소리가 커지고 코 고는 강도가 세지는 것도 걱정되고 너무 사람처럼 등 대고 자는 까망이 입에 반짝반짝 침이 흥건하게 흘러 있는 모습도 웃기면서 짠하다.  예전에는 설거지할 때도 어깨 위로 경공술 하듯 가볍게 뛰어올라 앵무새처럼 앉았던 아이가 지금은 좀 높은 의자에서 내려올라 치면 살짝 망설이는 모습을 볼 때도 마음이 아프다. 하긴, 그새 나와 남편의 모습도 예전 고양이 어릴 적 풋풋한 모습은 절대 아니니 고양이들만 나이 든 것은 아니다.

그런 평화로운 표정 지어봤자 소용없어! 발톱에 낀 까망이 털, 증거는 어쩔 것이여?!

  다행스러운 건 그러다가도 언제 그랬냐 싶게 식탐도 부리고 아침이면 빨리 이빨과자 내놓으라 카랑카랑 큰 소리로 울어대는 기세가 여전한 날들이 아직은 자주 돌아온다는 점에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두 아이들은 하늘 아래 익숙한 서로를 의지해서 추울 계절에는 숨숨집에서 체온을 나누고 좀 더운 날에는 베란다 시원한 바닥을 뒹굴거리다가 캣타워 높은 층을 서로 앉겠다고 (방금까지 세상 사이좋은 남매였으면서) 바로 머리 끄덩이를 잡기도 한다. 

 서로에게 익숙해지기까지 미숙함과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고통을 준 시간도 있었을 것이다. (고양이들도 유치가 빠지고 이빨이 자라는 동안 얼마나 우리 손가락 발가락을 물어댔던가!) 우리 아이들도 말을 할 수 있다면 내가 얼마나 무심하고 무지한 집사였는지 폭로해줄 수 있을 텐데.... 한없이 착한 우리 아이들은 남매 고양이 서로에게 보이는 신뢰 이상으로 이 미욱한 나에게 무한한 신뢰와 사랑을 준다. 새로운 만남도 굳이 막지는 않겠지만 이 두 마리와 맺은 묘연을 어떻게 잘 이어가서 20년 "고양이 대학 보내기"를 성공할지, 그게 지금의 나에게는 가장 확고한 소망이다.

작가의 이전글 노묘의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