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까망이가 츄르를 먹다 구슬같이 커다란 눈물방울을 마치 만화 속 어린아이처럼 부풀리더니, 또르르 흘렸다. 아니, 이게 무슨 상황이지? 처음엔 유난히 오늘 배가 고팠나 싶어 자율급식대의 밥그릇을 확인했다. 노랑이는 먹성도 좋고 까탈스럽지 않은 식성이지만 건사료만큼은 까망이가 더 좋아해서 항상 까망이가 더 많이 먹는 편이다. 밥그릇에는 깨끗이 담긴 사료가 별로 허물어지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러니 배고프고 시장이 반찬이라서, 10여 년을 거의 매일 먹던 츄르가 오늘따라 유난히 눈물 나게 맛있는 건 아닐 것이다.
조금 검색을 해보니 가능한 이론은 일명 고양이 감기라는 허피스, 또는 일시적인 누관 이상 두 가지 정도였다. 허피스라면 눈이 붓기도 하고 다른 부대적인 증상이 따라올 것이다. 눈물샘인 누관 이상이 있는 경우 지브리 만화 속 주인공들처럼 펑펑 구슬 같은 눈물방울을 흘리는 광경을 볼 수도 있다는 비디오 자료를 확인했는데 딱 까망이 모습이었다. 아이고..... 이제 눈까지 노화 과정의 시작인 건가 했는데 나이 어린 고양이들에게도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맑은 눈물만 가끔 흐르는 지금은 허피스는 아닌 듯하여 딱히 조치를 할 필요는 없지만 좀 더 지속되면 약간 진득한 밀도의 눈물도 나올 수 있게 되는 모양이었다. 그때는 병원을 가야겠다 생각하면서도 망설이지 말고 바로 병원을 가봐야 할 사안인데 괜히 굼뜨게 행동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결론은 괜히 내 심리적 안정을 위해 병원 스트레스로 아이 괴롭히지 말고 상황을 지켜보자는 쪽.
사실 13년 함께 살았다고 고양이에 대해 처음 입양한 사람들보다 딱히 뭘 많이 알거나 하는 건 아니다. 이 시대의 지식이란 스마트 기기 사용과 습득&사용 언어 스펙트럼에 따라 하루 이틀 검색과 학습으로 10여 년의 노하우를 너무 간단히 뛰어넘어 버리는 게 가능하다. 이런 시절일수록 오히려 확실한 비교우위를 갖는 지점은 대상자(고양이들)의 반응을 살피는 경험적 민감도정도, 그리고 쓰다듬고 안아줄 때 거부할 수 없는 손길처럼 신뢰로 쌓인 시간의 힘이 작동하는 영역뿐이다.
"방울방울 뚝뚝"의 눈물 현상은 츄르 먹을 때 시작해서 그 후 몇 분간 눈가를 푹 적실만큼 진행되어 가벼운 스팀타월 요법이 추가됐다. 일단 눈물은 깨끗한 탈지면이나 티슈로 닦아주고 도망 못 가게 슬쩍 안은 뒤 따뜻한 정도의 스팀타월을 눈가에 갔다 대고 30초. 처음에는 너무 싫어해서 일단 스팀 기운에 익숙해지도록 몸을 먼저 닦다가 다른 면을 뒤집어 잔열로만 눈에 찜질하는 식으로 했다. 하긴 나보다 1/10 사이즈인 고양이 입장에서 보면 거대한 열기를 방출하는 것이 얼굴 절반을 가리고 답답하게 만드는데 좋을 리가 없겠지. 그래도 세 번째부터는 반항을 포기하고 그냥 편히 몸을 내맡긴다. 그래, 이 작은 여집사는 덩치 허당 남집사와 달리 집요하지... 네 마음대로 해라! 이것도 오래 살면서 쌓인 고양이의 경험치인 것이다.
어깨에 착 기대주는 순간, 난 너만을 위해 사는 집사를 다짐하지. 스팀타월 일주일 만에 눈물은 잦아들었다. 하지만 이제부턴 언제든 증상이 또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그냥 받아들이고 살아야 한다. 어린 시절 성능 좋은 몸이 당연한 줄 알고 까불며 살다가 여기저기 조금씩 고장이 나는 내 몸과 익숙해지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었지.
ps. 영화 보며 우는 사람 딱 질색인 나라도 개나 동물이 죽으면 (창피하게도) 눈물샘 터지는 편이기는 했다. 그런데 어찌 된 게 요즘은 별것 아닌 자극에도 눈물이 줄줄. 최근 5-60년대 인간들의 허망한 우주경쟁에 희생된 라이카와 펠리세트 이야기에 대성통곡을 하고 말았다. 싸구려 눈물은 질색이야... 그리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작은 생명의 죽음은 견고한 척하는 교만한 자아를 무너뜨린다. 이래 저래 눈물이 많아지는 나이를 경험하는 집사와 고양이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