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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uu Nov 06. 2021

노묘의 시간

제1화. 만성 변비 시작

  우리집 두 아이들 까망이와 노랑이를 만난건 벌써 13년 전. 13살 나이의 노령묘 생애주기에 접어든 두 아가들은 한 배에서 난 남매 고양이다. 회사 창고 박스에 한 배에서 난 것이 분명해보이는, 눈도 채 뜨지 못한 꼬물이 4마리 무리를 발견한 동료는 자신은 이미 세 마리 유기묘를 돌보고 있는 터라 더 이상 개체수를 늘리는 것이 경제적으로나 아이들의 입장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눠 입양할 기회를 주었다. 그 당시 회사 커뮤니티에서 그 소식을 보고 나와 남편이 그 중 두 마리를 업어 온 지 벌써 13년이나 된 것이 가끔은 너무 비현실적이다.


  처음 데려온 그 해부터 지금까지, 운 억세게 좋았던 나는 잔병치레도 별로 없었고, 심한 해작질(경상도 할매들이 쓰는 못된 장난의 다른 표현) 한번 거하게 친 적도 없는 신사 숙녀 고양이들의 엄마였다. 자태나 걸음걸이 모두 숙녀 그자체인 까망이는 그 미모에 걸맞는 까탈로 입이 좀 짧아 그건 힘들었지만 세상엔 아주 별난 고영희 님들이 쌔고 쌘 것을. 그에  비하면 까망이의 편식은 가벼운 애교수준이다. 원래 고양이들은 아픈 티를 잘 내지 않는 무던한 동물이라 조금씩 아팠을 때도 있었을지 모르나 무딘 집사놈이 알아채지도 못한 채 넘겼을 수도 있다.


  그런데 13년째 접어 들면서 매일 아침 "까꿍"하고 나를 기다리던 엄지 굵기 보다도 더 튼실한 맛동산들이 살살 사이즈가 줄더니 급기야  최근 3주 상간에는 하루 걸러 한번, 또 사흘만에 한번 토끼똥 염소똥 만한 부실한 변을 보기도 하는 것이었다. 대책이 시급했다.

원래 고양이는 생애의 3/4 또는 4/5를 잠으로 보낸다고 하지만, 우리 아가들은 9세를 기점으로 급격히 더 움직임도 줄고 사냥놀이(따위)에 관심이 없다. 딱 만성변비의 전조.

  일단 상식적인 대처 부터 시작하고 있다. 그동안 치아건강을 위해 매일 아침 먹이던 이빨 과자부터 조치했다. 다른 간식에 다 호의적인 먹성 좋은 노랑이가 그리니즈 제품 이빨과자에는 좀 시큰둥해서 기름기를 날려보고자 에어 프라이어에 바싹 구워주곤 했는데 변비 끼를 감지한 후부터는 노랑이 코를 속일 정도만 살짝 더운김 쐬는 정도로 바꿔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테스티널 화이버 리스폰스"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은 처방사료가 도착하기 전까지 만이라도 습식 사료만 주려 했다. 그런데 건사료 외에는 진짜 새 처럼 먹는 까망이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먹는 양이 줄면 더 응아가 딱딱해지고 작아져서 변비가 악화될 수도 있으므로. 가능하면 물기 많은 간식 캔, 젤리 성분 많은 주식캔 돌려 막기의 나날 중인데 그조차 지루하다고 시위할까 걱정이 태산이다.

  대부분의 고양이들이 환장한다는 닭가슴살조차 '크런치'한 식감 아니면 씹는 척하다가 뱉어버리는 까망이 때문에 한마리는 그냥, 한마리는 바싹 매번 구워줘야 했는데, 최고급 프리미엄 닭가슴살 쯤 되면 육즙 물기있는 상태로 두마리 모두 먹어줘서 일반 닭가슴살보다 4~5배나 가격차이가 나는 프리미엄 그릴 치킨 닭가슴살로만 대령해야 하는 상황. 그래도 물기가 있는 상태로 먹게만 할 수 있다면 감지덕지할 따름이었다. 

생후 4~5주 추정 시점. 오염원 하수처리장 인근에서 태어난 것 때문인지 몰라도 태생부터 앞발기형인 4마리 형제들 모두처럼 앞발 두개는 발가락 구분이 모호하다. 뒷발은 정상.

  예전부터 고양이의 음수량 이슈는 변비 만이 아니라 더 심각할 수도 있는 신장문제에 연결된다고 하여 일찍부터 물그릇 및 물의 청결도에 집중했던 덕인지 다행히도 우리 아가들은 물 안먹어서 내 속을 썩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요즘은 노랑이의 경우 배를 만져보면 딱딱한 변이 만져질 때도 있어서 배 마사지를 시도하곤 하는데 그 효과에 대해서는 솔직히 아직 체감할 수 없었다. 그저 냥수기 물이 쭉쭉 줄어드는 것으로 변비 악화 가능성의 불안을 달래 볼 뿐이다.


  다시 건사료 문제로 돌아가서, 처방사료가 도착하기 전까지 건사료 내놓으라고 매일 밤마다 울어대는 까망이 때문에 수의사 분의 권고에 따라 단호박을 삶아 페이스트로 만들어 먹여보려고 했다. 웬걸. 색다른 음식에 대해 인간은 긍정적 호기심을 보이는 편인데 고양이들은 절대 그렇지가 않다. 새로운 먹을 것에 대해서 야생성 살아있는 동물일수록 경계심이 더 크다. 덕분에 첫번째 단호박 먹이기는 실패.


  다음은 단호박 삶은 것을 잘 으깨서(섬유질이 만져지지 않을만큼) 동글동글 빚어 살짝 말려서 언뜻 보면 사료랑 구분이 전혀 안가게 건사료들 틈에 섞어 넣었다. 페이스트를 바로 먹어주면 더 효과있었을 것 같은데, 보기좋게 1차 시도가 좌절된 만큼, 수분은 포기하고 섬유질 만이라도 더 먹게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어쨌든 물은 충분히 먹어주고 있는 것 같으니까. 


  처음에는 호박단 알갱이만 골라내는 것 같더니 어느 순간 귀찮았는지 먹기 시작했다. 인과관계를 단 3-4일만에 예단할 수 없으나 규칙적으로 변을 보기 시작했다. 처방사료가 오기로 되어 있는 오늘 이시간까지 나는 노묘들의 변비와 신경전 중이다. 


ps. 인간의 경우에도 노인변비가 '죽음에 이르는 병'이 된다고 하더라. 살아있는 모든 유기체는 역시 집어넣은만큼 밖으로 배출하는게 건강한 대사순환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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