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창문을 열었을 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나에게

by 수잔

터키석은 성공과 승리를 의미하는 푸른 보석이다.

누군가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한다면

터키석이 반짝이는 액세서리를 선물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내 탄생석이 궁금해서 인터넷에 검색하던 중

난 터키석이라는 푸른 보석을 발견했다.

민트색과 파란색이 섞인 오묘한 색깔의 보석이

어쩐지 오래전에 보았던 어느 겨울 하늘을 닮아 있었다.

1년 간의 재수 생활이 끝난 다음날,

내가 환하게 웃으며 올려다본 겨울하늘.

쉽지 않았던 시작점에서 나를 응원하고

고된 여정의 끝에서 버텨온 나를 안아줬던

20살의 소중한 기억이 생생하다.



좌절과 낙담, 눈물로 한 달을 보낸 후

나는 3월부터 기숙학원에 입소했다.

'1년이면 금방 끝날 거다',

'재수를 결심하는 네가 정말 멋있다'

'너라면 잘할 거야'

주변의 격려와 위로를 받으며

우울한 마음과 표정으로 기숙학원에 들어섰다.

눈을 감으면 ‘언제쯤 끝날까’라는 생각뿐이었고
눈을 떠도 ‘오늘도 또 시작이구나’라는 한숨이 먼저 나왔다.

하루가 너무 길어서 인내로 시간을 쌓아 올리는 기분이었다.

일명, 인내심 테스트 같은 거였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자리에 앉아

끝이 보이지 않는 하루를 버텨낸 끝에

어느덧 수능이 다가왔다.

생각보다 컨디션이 좋았고

조금만 버티면 학원에서 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찬바람과 긴장감에 온몸이 짜릿하기까지 했다.

솔직히 결과가 어떨지 불안하지도 않았고

이상하게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다.

기숙학원 담임 선생님이 고사장 앞까지 데려다주신 후

시험을 보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동생이 만들어준 생초콜릿과 녹차카스텔라를 먹으며

쉬는 시간이 정신을 다잡았고

시험 보는 와중에는 모든 집중력을 쏟아냈다.


시험이 끝난 뒤

가족들과 고사장을 나섰고 저녁으로 순댓국을 먹으며

가체점표를 가지고 수능 점수를 체 점했다.

성적은 예상보다 훨씬 잘 나왔다.
그동안의 고된 시간들이
하나의 숫자와 그래프로 증명된 순간이었다.
숫자만으로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정말 엄청난 노력으로 버텨냈기에
그 결과가 더욱 벅찼다.

정말 끝까지 버텨내 좋은 결과를 받은
그날의 내가 너무나도 대견했다.


저녁을 마친 후 다시 기숙학원으로 돌아왔다.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있었지만,

사실 머릿속은 새하얗게 비어 있었다.

온몸이 짜릿할 만큼 설레고 흥분된 순간이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느껴지는 공기가 달랐다.
오랜만에 맞는 자유의 냄새였다.

창문을 열자 차가운 겨울 공기가 코끝을 스쳤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맑은 하늘의 푸른빛이 폐 깊숙이 스며드는 것 같았다.
기숙학원 마당에는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학원 잠바를 입고 기숙사 밖으로 나섰다.

힘든 시간을 견뎌온 길을 걸으며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새벽마다 들리던 기상 종소리,

끝이 보이지 않던 모의고사와 인강,

지쳐 눈을 감으면 들려오던 숨소리와 한숨들.

그 무게를 견디며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멀리서 풍산개 다루가 나를 발견하곤 꼬리를 흔들었다.

나는 쪼그려 앉아 다루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웃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겨울 하늘이 믿기지 않을 만큼 푸르렀다.

한 점의 구름도 없이 깊고 짙은 파랑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 푸른빛이 눈 위에 반사되어 세상이 온통 반짝였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숨을 내쉴 때마다
입김이 흩어지고 그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었다.
그 순간, 모든 게 완벽히 고요했다.

그날의 하늘빛은 내 마음속 깊이 새겨졌다.
끝까지 버텨낸 이겨냄의 색, 단단하고 맑은 푸른빛.

고난을 지나온 이에게 주어지는 작지만 확실한 보상의 빛이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내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시간들도

결국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기 위한 과정이었다는 것을.



터키석은 성공과 승리를 의미한다.

나에게 터키석이 주는 말은 '성공'만이 아니었다.
끝까지 버티고, 견디고, 다시 웃을 수 있었던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었다.

이제 나는 그 푸른빛을 볼 때마다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는다.

겨울의 끝에서 맞은 그 하늘처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렸던 20살의 나처럼

나는 다시 나 자신을 믿기로 했다.






수선화 도안.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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