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했던 소꿉놀이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나보다 6살 어린 동생을 매일 놀아주곤 했다.
작은 손으로 내 손을 잡아끌었던 아기는
내 하루의 중심이었고 옛날에도, 지금도 내 가장 친한 친구다.
말이 서툴러도 할 말은 다하며 당찬 동생을 귀여워하며
베란다 밖에서 야무지게 역할을 나눠 소꿉놀이를 하는 게
너무나도 행복했고 소중한 추억이다.
소꿉놀이를 할 때에도 나랑 동생의 역할은 '언니'와 '동생'이었고
이 역할은 소꿉놀이가 어떤 장르였건 변함없었다.
그 시절의 상상 속 소꿉놀이 장소는
햇살이 부드럽게 내리던 작은 세상이었다.
풀냄새가 창가를 채우고 웃음소리가 방 안을 맴돌았다.
햇살이 고요하게 내려앉던 어느 오후
12살의 나는 여섯 살 동생과 마루 위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베란다에 있던 작은 텐트를 오두막이라 부르며
그곳에서 소꿉놀이 세트를 가지고 놀았다.
우리는 보따리에 빵 모양의 장난감을 집어넣고
그 보따리를 효자손에 끼운 상태로 '말괄량이 삐삐'에 나온 장면처럼
베란다에서 거실로 모험을 떠나며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쳤다.
내가 대학교에 입학해서 서울에서 자취를 하게 되었을 때
동생과 떨어져 사는 생활이 힘들었고
한창 예민한 10대가 된 동생 곁에 있어주지 못했던 게 미안한 나머지
일주일에 한 번씩 본가에 들러 동생에게 신경을 쏟았다.
동생 생일을 챙겨주기 위해 케이크와 에메랄드 팔찌를 산 적이 있었다.
동생의 탄생화가 에메랄드이기 때문이었다.
에메랄드가 의미하는 '치유', '희망'으로
동생에게 힘을 보태주길 바랐다.
어릴 때 동생과 소꿉놀이를 했던 상상 속의 오두막과
그 오두막을 둘러싸고 있는 푸른 숲 속이
자연스럽게 에메랄드를 떠올리게 했다.
그 후 나는 에메랄드 보석에서
어릴 적 나를 보며 놀자며 환하게 웃는 동생의 얼굴과
미니 텐트 안에서 소꿉놀이 세트로 요리를 하고 있던
나와 동생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건 소중한 추억이었다.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의 오두막이 떠오르고
햇살이 스며들던 베란다의 공기 속에서
6살이었던 동생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시간이 흘러 이제 동생은 훌쩍 자라 대학생이 되었다.
지금은 대학교 동기들이랑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동생은
가끔 내 연락을 봐도 대답을 미루고
사진을 찍자 하면 “그만 좀 찍어” 하며 신경질을 낸다.
하지만 내 눈에는 여전히 귀여운 아기다.
나 역시 어엿한 어른으로서 살아가고 있지만
동생이 차고 다니는 에메랄드 팔찌를 볼 때면
소꿉놀이의 추억을 꺼내볼 때면 이때로 돌아가고 싶어
자연스럽게 눈시울이 붉어지곤 한다.
한편으로는 행복했던 기억을 품고 살아가다
가끔씩 그 행복을 꺼내보며 마음을 다독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