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다시 사랑하게 된 여름

내 탄생석, 아쿠아마린

by 수잔

내 탄생석 아쿠아마린은 고요한 바다를 닮은 보석이다.
바람이 잦아든 뒤 찰랑이는 물결처럼
잠시 흔들림이 멈추는 순간에 진짜 빛을 드러낸다.

올해 여름의 나는 꼭 그런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새롭게 알게 된 원래의 나 자신을.


대학원 생활과 취업 준비 속에서
내 하루는 늘 바쁘고 마음은 늘 지쳐 있었다.

제대로 푹 쉬어본 적이 없었다.

항상 걱정과 불안 속에서 학교로 향했고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는 습관을 기르며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버텨왔다.
사람들 속에 있어도 외로웠고
웃는 얼굴 뒤로는 매일 무너지는 마음을 다독여야 했다.

중간, 기말 페이퍼를 제출한 끝에

종강과 함께 뜨거운 여름이 찾아왔다.


연구 미팅 때문에 학교를 오가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우연히 길가에 놓인 인생네컷 부스 앞에 멈춰 섰다.

평소의 나라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사진 찍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정말 친한 친구나 동생이 아니면

혼자 사진을 찍으러 부스 안에 들어가지를 않았다.
하지만 그날은 왠지 혼자서 인생네컷을 찍고 싶었다.

나는 무작정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마음에 드는 프레임을 고르고 카드 결제를 한 후

촉박한 타임 안에서 서투른 포즈와 표정을 지었다.


5,4,3,2,1

찰칵


인생네컷 카메라 렌즈는 핸드폰 카메라와 달리

왜곡이 덜해서 그런가 내 모습이 있는 그대로 잘 나오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괜히 기분이 들떴다.

프레임 안에서 희미하게 웃는 얼굴이 점점 밝아지기 시작했다.

수줍은 브이 포즈부터 시작해서 꽃받침 포즈까지

어색하지만 평소보다 과감한 내 모습을 봤다.


'난 웃을 때 이런 표정이구나.

카메라 앞에서 나는 몸과 얼굴이 굳는구나...

그래도 생각보다 사진 찍는 게 재밌네.'


나는 렌즈 속 나를 바라보며

처음으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천천히 마주했다.

그동안 다른 사람의 시선에 맞춰 웃고

남들 앞에서 숨겨왔던 모습을 찾은 느낌이었다.

프레임 안에 있는 내 얼굴은 수줍은 표정이었지만

나는 그 어색한 표정이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그건 늘 타인에게 보여주던 ‘나’가 아니라

진짜로 웃고 있는 나 자신이었다.


내가 고른 프레임은 푸른빛이 감도는 여름 바다색이었다.

화면 속 나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사진 찍는 게 생각보다 싫지는 않았다.


그동안 나는 거울 속 얼굴보다

타인의 시선에 비친 나를 더 많이 신경 쓰며 살아왔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작은 부스 안에서 처음으로

사진 찍는 걸 즐기는 '나'를 발견했고

그 단순한 사실이 뭉클하게 다가왔다.

그 순간, 마음 한켠이 따뜻하게 풀렸다.


나는 네 컷의 사진을 찍으며
조용히 나 자신을 다시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다.

여름은 더워서 싫지만 이번 여름은 특별했다.
부스 밖으로 나왔을 때 바람은 유난히 부드러웠다.
바쁘고 무거웠던 시간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나답게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를 남긴 것이다.

내 탄생석인 아쿠아마린 목걸이가 사진에서 반짝이고 있었고

유독 3번째 컷에서 밝게 웃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 예뻤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온전한 어른이 된 내가 이 사진을 보게 된다면

과연 무슨 생각이 들까.

이때의 나는 치열했고 힘들었고 많이 울었지만

어떤 순간보다도 예뻤다는 생각을 할까.

미래의 나와 현재의 나에게 소중하고 예쁜 추억을 선물한 것 같았다.

누구에게 보여줄 필요도 없이

그저 내가 소중하게 간직하기만 하면 되는 사진을 보며

난 행복했다.

다음에도 우연히 인생네컷 건물을 보게 된다면

난 또 망설임 없이 들어갈 것이다.

29살의 나, 30살의 나, 그리고 앞으로의 나를

사진이라는 기록을 남기고 싶어졌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내 반짝이고 예쁜 순간을 마주할 때

나만 느낄 수 있는 그 행복이란 정말 특별했다.

앞으로 더 예쁘고 자연스럽게 웃는 연습을 해야겠다.

난 피식 웃으며 집으로 향했다.

평소 터덜터덜 걷던 내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누구의 시선이 아니라
내가 나를 바라보는 마음이
가장 깊고 투명한 위로가 된다는 것.

이날 찍은 네 장의 사진은 책장 맨 위에 보관하고 있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마주하는 나를 또 만나고 싶다.
파도 아래 아무도 모를 고요한 공간에서 마주한 건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예쁘고 반짝이는 순간의 내 모습이었다.
사진 안에는 여전히 그날의 공기와 빛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밖에서 사람들에게 치이고 상처받는 순간에

나는 가끔씩 이 사진을 꺼내보곤 한다.

나에게 건네는 미소를 보며 조용히 마음을 다잡는다.


'내가 좋으면 됐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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