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로운 빛이 머무는 나만의 공간
만약 잠시라도 쉬어가고 싶다면
사람들은 어떤 공간을 떠올릴까.
잔잔한 파도가 머물고 있는 통유리로 만들어진 집,
은은한 햇살이 비치는 조용한 숲 속 오두막,
아무도 없이 맞이하는 어둠 속에서
모래 위로 내리 앉은 고요가 모든 소음을 삼키는 사막.
나는 그중에서도 극지방의 하늘에 흐르고 있는 오로라가 떠오른다.
어둠 위를 유영하는 초록빛과 푸른빛, 보랏빛의 물결,
바람에 스치는 듯 아른거리는 빛살들,
한순간도 같은 모양을 하지 않는 신비로운 흐름.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
그저 눈앞에서 춤추는 오로라의 숨결을 바라보는 일만으로
마음의 무게가 천천히 풀려내려 가는 그런 곳.
잠시라도 멈춰 서고 싶을 때,
그 고요하지만 살아 있는 빛의 공간에서
누구라도 숨을 고를 수 있을 것만 같다.
그 신비로운 빛결은
라브라도라이트라는 보석을 떠올리게 한다.
각도를 바꾸면 전혀 다른 색을 보여주는 돌,
겉에서 보면 어둡고 수수하지만
빛이 스치는 순간 갑자기 오로라처럼 반짝이는 보석.
나에게는 라브라도라이트같이
잠시라도 숨을 돌릴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오로라를 볼 수 있는 공간도,
잔잔한 파도를 볼 수 있는 공간도,
고요한 사막도, 숲 속도 아닌
작고 아늑한 카페다.
라브라도라이트는 내가 사랑하게 된 골동품 카페와 닮았다.
회사를 다녔던 뜨거운 여름이었다.
이도저도 아니던 내가 결국 선택해 버린 회사에서
인턴으로 잠시 근무하게 되었다.
서울에서 혼자 지내며 나는 지쳐 있었다.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하며
16시까지 해야 하는 업무를 닥치는 대로 하던 나는
아무도 모르게 속에서 작은 균열이 나기 시작했다.
주말이 오면 나는 본가로 향했고
자연스럽게 낡은 골목 사이에 있는 카페로 달려갔다.
언젠가 우연히 알게 된 이 공간은
따뜻한 나무 향기, 잔잔한 음악을 지나
오랜 시간이 담겨있는 책장으로 연결되어 있는
작은 골동품 카페였다.
나에게는 이 카페가 호그와트를 연상케 하는 신비로운 공간이었다.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내가 카페에 들어가는 순간
나를 힘들게 했던 모든 생각들이 잠시 잊혔다.
창가에 앉아 카페모카를 마시며
한동안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고요하고 신비로운 이 공간에 몸을 맡겼다.
시간이 잠시 멈춘 듯했다.
책 냄새를 감싸는 고용하고 따뜻한 공기가
삶에 지친 나를 천천히 치유하고 있었다.
인턴으로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일했던 그 회사에서
나는 인간관계에 치였고 얼마 남아있지 않았던 자존감도 크게 흔들렸다.
대놓고 무시하거나 불편함을 던지는 말투,
사소한 실수에도 과하게 몰아붙이는 분위기,
보이지 않게 날 소외시키는 시선들.
그 모든 것이 하루하루를 마모시키는 모래처럼
내 안의 자신감을 깎아내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마음 한쪽이 묵직하게 가라앉기만 했다.
그래서였을까.
주말마다 그 카페로 향하게 된 건
어쩌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문을 열던 순간 퍼지던 나무의 향,
앤티크 램프 아래에서 조용히 멈춰 있던 시간,
그리고 아무에게도 상처받지 않는 고요함.
그곳에서만큼은 누구도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나는 단지 ‘나’로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존재였다.
그 카페는 마음이 다친 사람을 위해
살그머니 열어둔 신비로운 공간이었다.
폭풍이 지나가며 퇴사를 한 끝에
다시 찾은 그 골동품 카페는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잠시 숨을 고르게 해 주었다.
한동안 참아왔던 숨이 비로소 풀리고
내 안에 남아있던 상처들도 조금씩 사라질 때 즈음,
난 다시 일어섰다.
라브라도라이트가 의미하는 신비로움과 치유는
내가 그 공간에서 느꼈던 감정과 정확히 닮아 있었다.
은은한 오로라처럼 신비로운 빛을 뿜는 그 보석은
나를 감싸주던 골동품 카페와 닮았다.
때로는 따뜻한 목재의 색으로,
때로는 빈티지 조명의 금빛으로
상처받아 흐릿해진 마음이
그 빛으로 나를 감싸며 조금씩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곳의 공기만으로도 위로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날 그 공간 안에서
마치 오로라 아래 서 있는 사람처럼
잠시 모든 무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형체 없는 빛이 조용히 어깨 위에 내려앉아
다시 일어설 때까지 내 곁을 지켜주는 것 같았다.
그 신비로운 고요 덕분에 나는 다시 나를 믿을 수 있었다.
서서히 상처를 회복하며 숨을 돌리던 그날을 떠올리며
나는 상처가 많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우리 잠시 쉬어가도 되지 않을까요?"
숨을 고를 수 있는 공간은 반드시 어딘가에 있다.
누군가에게 그 공간은 나처럼 작은 카페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 학교 운동장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 무인 꽃집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조용한 산책길일 수 있다.
그곳에서 잠시 쉬어보면 어떨까.
우리는 모두 다시 시작할 힘을 가지고 있다.
가끔은 잠시 멈춰 숨을 쉬어주는 것만으로도
다시 일어설 힘이 생긴다는 걸
작은 골동품 카페가 알려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