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의 오닉스

0101, 새롭게 다짐하다

by 수잔

1월 1일.

내가 27살의 시작을 맞이했던 새해 첫날은

어느 때보다도 행복했다.

새해가 시작되면서 세상이 잠시 멈춘 듯 고요해지는 순간이었다.

창밖의 겨울 공기는 차가웠고 나는 그 서늘함이 좋았다.

그 서늘함에는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설렘이 담겨 있었다.


검은빛 속에서 신비로움을 뿜어내는 오닉스처럼

베란다 밖으로 보이는 밤은 달빛 없이 유독 캄캄했다.

나는 제일 좋아하는 하이볼을 만들었고

제일 좋아하는 영화를 틀었다.

시작했기에 특별한 이 날을 그냥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플라스틱 컵 안에서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

디즈니 영화 속에서 나오는 밝은 OST,

그리고 새해 자정이 주는 고요함이

은은하게 섞여 내 방의 공간을 채웠다.


그 고요함 속에서

차가운 하이볼 한 모금과 영화의 분위기에 기분이 좋았다.

영화의 절정이 달할 때 즈음

꽃만 피워내던 한 소녀의 손에서 커다란 나무가 자라기 시작했다.

내 코끝은 시큼해졌고 마음이 서서히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화 속 인물들 뿐만 아니라

나 역시 나를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지난해에 있었던 일들이 서서히 스쳐 지나갔다.

잘 버텼던 순간들보다 무너졌던 순간들이 더 선명하게 떠올랐다.

사람들 앞에서 애써 웃으며 넘겼던 상처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혼자 곱씹어야 했던 말들,

희망이 절망이 되어 내 마음을 갉아먹던 순간들까지.


하지만 이상하게도 우울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안에서 묵직한 감정이 차분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나를 흔들어놓았던 못된 말들과

내가 견뎌야만 했던 괴로운 상황들이

조용하게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더 선명해지는 존재들이 있듯이

자정의 캄캄한 어둠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이 고요함이 나를 서서히 정화하고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마지막 하이볼 한 모금을 삼켰을 때

왠지 모를 희망이 차올랐다.

'올해부터는 뭘 해볼까?'

다시 도전해 볼까 아니면 새롭게 도전해 볼까.

시작을 알리는 새해를 맞이하며

난 무언가를 새롭게 해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렜다.

그리고 행복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 시작점에서 혼란이 고요로 잠잠해지며
나는 비로소 지난 시간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었다.
부서졌던 날들도, 흔들렸던 마음도
모두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조각들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는 스스로가 믿기지 않을 만큼 대견했다.
그리고 시작을 앞둔 지금 이 시간이

꽉 찬 행복으로 다가왔다.


새해 자정의 이 짧은 숨결 속에서
나는 그 어떤 새해 소원보다 값진 것을 찾았다.

또 한 해를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과

그 끝은 다시 행복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믿음.







수선화 도안.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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