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사람이 싫다

관계를 정리하는 마음의 기준

by 수잔

나는 그 사람이 싫다.
이 문장을 인정하기까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싫어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건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그 감정을 인정하는 순간
내가 예민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관계를 쉽게 끊어내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괜히 나 자신을 먼저 설득했다.

그래서 나는 그 감정을 설명하려고만 했다.
이해하려고 애썼고 맥락을 붙였고
혹시 내가 과한 건 아닐지 나 자신을 먼저 의심했다.


누군가를 싫어하는 감정이 분명해진 건
10년 지기 친구와의 관계를 정리하게 되었을 때였다.

고등학생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와
대학, 졸업, 사회인까지
10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지나왔다.
그만큼 오래된 관계였기에
나는 더 많이 참았고 더 많이 조심했다.

하지만 그 관계 안에서

나는 점점 말을 고르게 되었고

축하받지 못하는 순간들이 반복되었으며
내 선택이 비교와 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그제야 알았다.
이건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를 유지하는 기준의 문제라는 걸.

나는 나의 선택이 가볍게 평가되지 않는 관계를 원했고
노력의 무게가 농담처럼 소비되지 않는 자리에 머물고 싶었다.

관계를 힘들게 만드는 건 날카로운 말 하나가 아니라
그 말들이 쌓여 관계의 공기를 바꾸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늘 조심하는 쪽이
나 혼자라는 느낌이 들었을 때
이미 균형은 무너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관계를 이렇게 정리하기로 했다.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감정을
끝까지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
말 한마디를 꺼내기 전에
계속해서 나 자신을 검열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


싫어하는 감정은 누군가를 공격하라는 신호가 아니라
나를 보호하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모두를 이해할 필요는 없고

모든 관계를 끝까지 끌고 갈 의무도 없다.
좋아하지 않아도 되고

미워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나를 깎아내리는 자리에
계속 머물지 않을 자유는 내가 가져도 된다.

관계를 정리한다는 건
누군가를 잘라내는 일이 아니라
내 삶에 어떤 태도와 시선을 허용할지 결정하는 일이다.


나는 그 사람이 싫다.
그리고 그 감정을 이제는 기준으로 삼는다.

10년 지기 친구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나서야
나는 알게 되었다.
관계를 끝내서 평온해진 게 아니라
기준을 세웠기 때문에 마음이 조용해졌다는 걸.




수선화 도안.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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