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점 인턴이었던 시절
"아가씨가 뭐 할 줄은 알아?"
"언니! 내가 얼마나 더 기다려야 돼?"
"이 아가씨가 뭘 모르네."
대학교를 졸업한 후, 저는 2년 동안 로스쿨 입시에 매진했습니다.
그러나 반복된 실패는 제 마음 깊숙한 곳에 두려움과 불안을 심어놓았고
저는 취업 준비라는 새로운 도전을 선택하게 되었고 금융권 취업 준비에 온 힘을 쏟았습니다.
2024년 3월, 어느 금융기관 인턴 전형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운명처럼 배정받은 곳은 집 근처 영업점이었습니다.
그곳은 과거 아버지께서 퇴직하시기 직전에 근무하셨던 영업점이었고
직원들 중 몇몇 분은 아버지를 통해 저를 알고 계셨습니다.
합격 소식을 부모님께 알리기 전까지 저는 인턴에 지원했다는 사실조차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지만 근무지가 집과 가까운 영업점이라는 사실을 숨길 수는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기쁜 마음으로 어머니께 털어놨지만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닥쳤습니다.
아버지께서 지인들에게 연락을 돌리셨고
직원들 사이에서 저는 ‘아버지의 딸’이라는 이름으로 빠르게 각인되었습니다.
저는 그분들 눈에 단순히 아버지의 딸로 비쳤습니다.
어느 순간 저는 제가 노력해서 얻은 기회를 오해받고 있다는 사실에 억울하고 불쾌했습니다.
어떤 직원분은 저를 단순히 지인의 딸로만 대하셨습니다.
친한 직원의 딸이니 당시 부지점장은 선이라는 것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특히 제가 집에서 아버지와 갈등이 있었던 날에는
그는 회식 자리에서 아버지와 제가 화해할 것을 강요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때 술에 잔뜩 취한 그가 저에게 가까이 다가와했던 말이 있었습니다.
"내가 너보다 고참이야."
제 머리를 쥐어박더니 신체적 접촉을 시도하면서 부지점장이 저에게 한 말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대각선 방향에 앉아 있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고 저는 불쾌했습니다.
다음날 아버지가 지인들과 계신 술자리에
제 손목을 끌고 가서 화해를 강요한 일에 대해서
그 부지점장은 사과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취해서 기억이 안나는 척하는 것이었을까요.
이후 불쾌한 감정은 절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근무 중에도 이 불쾌한 감정이 저를 괴롭힐 때마다 속으로 계속 되뇌었습니다.
"나는 인턴이야. 여기 계속 있는 게 절대 아니야.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쓰기 위해 버텨야 돼."
영업점에서의 업무는 끊임없는 고객 응대였습니다.
초기에는 따뜻한 미소로 다가오시는 고객님들 덕분에 작은 보람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모바일앱 사용법을 수줍게 물어보는 학생들,
손녀 같다며 격려해 주시는 어르신들 덕분에 힘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고객이 친절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린 사원이 만만해 보였는지 무례한 말투와 행동으로 저를 괴롭히려는 고객님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반말을 듣고도 웃어야 했고 부당한 요구를 묵묵히 참아야 했습니다.
하루를 마치고 나면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기도 했고
헬스장에서 눈물을 삼키며 운동으로 하루를 마감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겪고 있던 이 상황들이 로스쿨 입시를 실패해서 그런 거라며 스스로를 끊임없이 원망하고 증오했습니다.
4월, 5월.
시간이 지나면서 무례한 고객들의 태도에 점차 익숙해졌습니다.
그들을 대하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며 무엇보다 스스로를 치유하는 방법을 터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몇 가지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첫 번째, 스스로가 강하다고 자만하는 사람들은 약해 보이는 사람들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다.
상대방이 약한지 강한지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스스로 강하다는 착각 아래 내린 판단일 뿐.
저는 더 이상 그들의 성급한 판단에 흔들리지 않고자 스스로를 단단히 붙들었습니다.
두 번째, 무례한 사람들의 언행에 웃어줄 필요는 없다.
근무 초기에는 모든 고객과 직원들한테 항상 친절하고 밝게 웃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돌아온 것은 자신의 무례한 행동이 용납된다는 그들만의 착각이었습니다.
저의 사생활을 존중하지 않았던 한 직원의 무례함과 어리다고 무시하는 진상고객의 무례함.
저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한 언행에 맞설 수 있는 단호한 태도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깨달음 끝에 저는 스스로와 약속했습니다.
'웃는 얼굴에 침 뱉는 사람들 수두룩하다. 정색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자.'
인턴 기간이 끝나고 건물에서 나오자마자 느꼈던 후련함이 생생합니다.
저를 괴롭힌 존재들을 그곳에 모두 두고 나왔다는 후련함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혹독한 수련을 끝내고 동굴 밖으로 나온 듯한 쾌감이 저를 감쌌습니다.
"이 인간들 다시는 보지 말자."
한편으로는 게임 캐릭터처럼
저만의 레벨이 상승한 듯한 느낌이 들었고
이제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스트레스만 받을 줄 알았던 인턴 경험은 이후 사회생활을 할 때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을 조심하고 또 조심할 것.
할 말은 될 수 있으면 할 것.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힘들었던 경험은 오히려 저를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되었고, 부정적인 기억들을 받아들이고 치료하는 과정은 저를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상처받았던 일을 겪을 때마다 깨달음이 머릿속을 채웠습니다.
힘들고 괴롭다는 생각보다는 좋은 경험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진상고객들의 언행과 직원의 무례한 태도를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했다면,
저 스스로가 무너져 내릴 수도 있었다는 아찔함을 떠올렸습니다.
기분 나쁜 경험을 했다면 저 자신에게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말하며
상처받은 경험을 했다면 스스로에게 너무 아프다고 털어놓아야
스스로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습니다.
상처를 마주하고 치료하는 과정이 바로 이런 것이죠.
상처를 흉터로 남긴 채 그 흉터를 바라보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저만의 기준을 세우고 있습니다.
지금의 저는 많이 단단해져 있습니다.
작년의 저라면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많이 대담해져 있습니다.
지금의 저는 작년의 저와는 다릅니다.
이제 저는 상처를 흉터로 남기되 그 흉터를 제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무례한 사람들을 마주할 때면 속으로 미소 짓습니다.
"당신은 그렇게 살겠지만, 저는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상처받을 일이 생길 것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는 누구나 절대 피할 수 없는 현실이겠죠.
상처를 받았다면 아파해도 되고 때로는 잠시 앉아 쉬어가도 됩니다.
이때 반드시 명심해야 할 사항은
1. 나 자신에게 아프다고 말할 것.
2. 상처를 치료할 것.
3. 흉터를 보며 나를 지킬 방법을 생각할 것.
4. 나는 강해지고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