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버티게 해주는 따뜻한 기억
다섯 살 무렵이었다.
나는 외할머니 집 마포도씨앗을 묻은 적이 있었다.
외할머니가 붉은 포도를 씻어다 주시면
그 포도를 먹으면서 비디오를 보고
남은 포도 씨앗을 가지고 놀이터로 향했다.
내 작은 손으로 흙을 파고 씨앗을 넣자
외할아버지가 옆에서 흙을 덮어 주셨다.
나는 가져온 물뿌리개로 그 위에 물을 부었다.
언젠가 그 씨앗에서 방금 먹은 포도가 자라날 것만 같았다.
그 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놀이터에 갈 때마다 나는 그 자리를 들여다봤다.
오늘은 싹이 날까, 내일은 땅이 갈라질까.
그 작은 흙더미 앞에서 한참을 앉아 있곤 했다.
결국 싹은 나지 않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또 다른 씨앗을 묻었다.
유치원 급식에서 강낭콩이 나오면
익힌 것도 몰래 주머니에 넣어 집에 가져왔다.
그 콩이 내 손에서 다시 살아날 거라 믿었다.
그 콩을 심으면 하얀 싹이 쏙 올라올 것만 같았다.
그 시간들은 나에게 작은 비밀 같았다.
햇빛에 반짝이는 포도씨앗과 강낭콩은 작은 보석 같았다.
빨갛고 보랏빛이 감도는 그 색은
이상하게 내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루비라는 보석을 처음 알았을 때,
나는 자연스럽게 그 색에 마음을 빼앗겼다.
빨갛고 반짝이는 그 빛을 볼 때면
어린 시절 마당에 묻어 두었던 포도씨앗과 강낭콩이
햇빛에 반짝이던 장면이 겹쳐졌다.
그 설렘과 호기심이 보석에 스며 있는 것 같았다.
루비는 내게 단순한 보석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어린 시절의 두근거림,
기다림을 배워가던 작은 심장이 들어 있었다.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외할머니, 외할아버와의 추억도
이 작고 예쁜 보석 안에 들어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리운 내 어린 시절도 함께 보석 안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지금도 하루가 버거운 날이면
어린 시절, 순수하고 귀여웠던 나를 떠올리며 피식 웃는다.
포도씨앗과 익힌 강낭콩을 놀이터 모래에 묻는 5살의 나는
28살의 내가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도록
작은 손을 내밀어 주곤 했다.
그 작은 씨앗들은 결국 싹을 틔우진 못했지만
대신 내 안에 기다림과 설렘을 남겼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웃을 수 있는 힘을 남겨 주었다.
어린 시절의 따뜻한 순간과 즐거운 기억은
지금도 나를 지켜주는 작은 루비가 되어
하루의 끝에 조용히 빛난다.
그 빛은 내가 무너져 가는 순간에도
잃어버린 길을 되찾아 나아갈 수 있도록
조용히 등을 밀어주었다.
내 작은 루비는 언제나 내 마음속에서
작지만 뜨거운 심장처럼 뛰며 나를 지켜준다.
덕분에 나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작은 씨앗에서 싹이 나고 잎이 나기를 바라던
그 어린 나를 떠올리면
요즘 아무리 힘들어도 마음이 조금 풀어진다.
그때의 나는 매일같이 흙을 들여다보며
언젠가 싹이 틀 거라 믿었다.
그 믿음과 설렘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무너질 듯한 순간에도 희미하게 웃게 하고
다시 하루를 버틸 힘을 건네준다.
그 루비 빛깔은 내게 다시 일어설 용기와
꿈을 버리지 않게 만드는 심장을 남겨 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산다.
내 꿈을 사랑할 수 있고 일상에서 웃을 수 있다.
언젠가 또 새로운 싹을 틔울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말하고 싶다.
당신에게도 작은 루비가 빛을 내고 있다.
어릴 적 순수했던 당신,
작은 손으로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던 당신에게서.
오늘이 힘들어도 그 빛을 떠올리면
다시 숨을 고르고, 다시 걸어갈 힘이 생길 것이다.
오늘 하루를 버틴 것만으로도
당신은 충분히 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