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처럼 스쳐간 하늘빛 너

하늘빛이 났던 첫사랑의 기억

by 수잔


최근 SNS에서 토파즈 목걸이를 본 적이 있다.

맑고 투명한 하늘색의 보석을 보는 순간,

하늘빛 바람막이를 입고 있던 그 애가 떠올랐다.


누구나 한 번쯤은 잊히지 않는 첫사랑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 그 기억은 초등학교 6학년 봄이었다.

6학년 6반 교실에서의 기억.

그 애는 초등학교 졸업 후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며

한 번도 잊지 못한 예쁜 추억으로 반짝이고 있다.


난 초등학생 시절부터 성격이 급해

아침 일찍 학교를 가곤 했다.

학교에 일찍 가서 좋았던 점은

아무도 없는 교실의 서늘하면서도 설레는 공기를

나 혼자서 맡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쌀쌀한 초봄 기운이 코끝을 스칠 때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정말 좋았다.

새롭게 무언가가 시작되는 설렘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내 첫사랑이었던 그 애는

나 다음으로 학교 교실에 들어서던 내 짝꿍이었다.

그 애는 주로 친동생의 하늘색 바람막이를 입고 다녔다.

오죽하면 내가 하늘색 바람막이를 입은 남자애를

그 애의 동생이라 확신할 정도였다.


햇빛이 사선으로 들어오던 빈 교실로 향할 때

그 애는 계단을 오르는 내 뒤에서

나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


우리 반에서 가장 잘생기고 축구도 잘하는 친구였기에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그 애가

반에서 가장 조용했던 나에게 인사를 건네자

난 인사가 향한 대상이 나일 줄 모르고 지나쳤다.

교실로 들어서자 그 애는 다시 한번 나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


확실히 나한테 인사한 게 맞았다.

13살의 나는 부끄러움을 굉장히 많이 탔고 소심했기 때문에

너무 쑥스러운 나머지 그 애의 인사를 못 들은 채 하고

복도로 나가 버렸다.

그 애가 싫을 리는 없었고 그저 부끄러웠다.

부끄러우면서도 기분만은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


그 애는 무쌍의 시원한 눈매, 차가운 인상이었지만

나에게 인사를 건넬 때 활짝 웃고 있었다.

내 짝꿍이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내가 그림을 그릴 때, 시험 성적표를 받았을 때,

플루트를 연주할 때 칭찬을 건넸다.

내가 누군가로부터 칭찬을 받은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차갑게 보였던 첫인상과 다르게

그 애는 나를 볼 때마다 장난을 걸었다.

남자애들의 장난을 진절머리 나게 싫어했던 나였지만

그 애가 장난치는 순간만큼은 기분이 좋았다.

물론 그 애의 장난에도 부끄러워서

그 자리를 피해버렸지만

학교 다닐 때 답답했던 마음이

그 애가 나에게 인사를 건네고, 칭찬을 건네고

장난을 칠 때마다 시원한 물에 잠긴 듯 마음이 맑아졌다.


그래서인지 나는

일찍 학교를 가서 텅 빈 교실의 서늘한 공기를 느끼고

짝꿍인 그 애에게 수줍게 말을 건네는 일상마저 좋아하게 되었다.

공부를 잘하지 못했던 그 애는

공부를 잘했던 나를 부러워하며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게 해 주었다.


우연히 3개월 동안 자리를 바꾸지 않아서

나는 그 애와 급속도로 친해졌고

그 애의 장난에 쑥스러워하지 않고

같이 장난을 던지기 시작했다.

내가 그 애의 공부를 도와주기도 했고

다른 남자애들의 짓궂은 장난에

그 애가 내 편을 들어주기도 했다.


15년 후 지금도

이 3개월이 나에게 너무 소중하다.

내가 가장 많이 웃어서일까,

두근거리고 설렜던 순간이라 그런 걸까,

아니면 누군가를 처음 좋아해서 그런 걸까.

어쩌면 내가 나를 가장 많이 아꼈기에 그런 거일 수도 있다.

내가 스스로를 대단하게 여길 수 있었던 건

예쁜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그 애 덕분이었다.


졸업하는 순간까지

나는 그 애에게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다.

21살 때 잠시 연락이 닿았었지만

얼마못가 연락이 다시 끊겼다.

더 이상 그 애는 내가 알던 추억이 아니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까지 한 번도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 게

정말 후회되고 속상했지만

난 쑥스러움을 많이 탔던 13살의 내 모습을

하나의 추억으로 기억하기로 했다.

물론 그 애도 이제는 마음이 아니라

기억 속에 담아두기로 했다.


나만이 가지고 있는 6학년 때의 예쁜 추억이
지금도 내 마음 한구석에서 맑게 반짝인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누군가의 눈빛과 말 한마디에
마음이 두근거린다는 걸 알았다.
좋아한다는 감정을 느끼며
나라는 사람을 조금 더 아끼게 되었고,
내가 특별한 존재일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믿게 되었다.

그래서 그 봄의 기억은 단순한 첫사랑의 추억이 아니라
내가 조금 더 나답게 자라는 순간이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애가 만들어주었던 그 시절의 설렘 덕분에
나는 내 안에 숨어 있던 새로운 나를 만날 수 있었다.
그때의 나는 여전히 내 안에서 투명한 빛을 머금고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교실 창문을 열며 나와 잡담을 하던 그 애의

하늘색 바람막이가 아직도 눈앞에 그려진다.

맑은 하늘빛의 그 애의 투명한 미소가 아른거린다.


소심했던 나를 조용히 일으켜 세워주고,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만들어 준 그 애.

처음으로 두근거림을 알게 해 줬던 그 애.


내 마음을 몰랐을 추억 속의 그 애에게

늦었지만 고맙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