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웃게 했던 소중한 존재
가넷은 ‘우정’, ‘충성’, 그리고 ‘생명력’을 상징한다고 한다.
붉고 따뜻한 빛은 마치 늦은 오후의 햇살 같다.
그 빛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는 12살 여름의 나로 돌아간다.
그리고 친할아버지 집 마당에서 처음 만난
작은 아기 진순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시골은 원래 내가 싫어하던 곳이었다.
명절만 되면 부모님에게 끌려가듯 가야 했다.
무엇보다 내가 집을 비운 사이
엄마 부탁으로 이모네 식구들이 우리 집에 와
내 방에 멋대로 들어가 내 보석함을 뒤지고
물건을 꺼내놓는 일이 반복되었다.
평소에는 나랑 내 동생이 자기들 물건을 손대면
금방이라도 싸울 기세로 으름장을 놓던 사촌 남매가
내 물건을 그렇게 쉽게 건드린다는 게
어린 나에게는 늘 억울하고 모욕처럼 느껴졌다.
그 상황에서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없었기에 어린 나에게 힘든 시간이었다.
그래서 시골 가는 길은 언제나 괴롭고 불편했다.
그런데 12살 되던 해,
할아버지 집 마당에서 진순이를 만났다.
작은 아기 진돗개가 꼬물꼬물 움직이며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아기 진순이였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정말 좋아했다.
특히 강아지를 제일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귀여운 아기 강아지를 보고
한순간에 기분이 밝아진 느낌이 들었다.
진순이의 보드라운 흰 털, 동그란 갈색 눈동자,
앙증맞은 꼬리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앉아
인형 같은 강아지와 놀았다.
그날 이후 명절이 조금 달라졌다.
친척들이 귀찮게 해도, 내 방이 엉망이어도
진순이를 볼 수 있다면 시골에 가고 싶었다.
아니, 어쩌면 그런 힘든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기에
진순이가 있는 곳으로 가고자 했던 게 맞다.
세월이 흘러 내가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는 동안
진순이도 함께 자랐다.
개의 시간은 사람보다 빨랐고
아직도 어렸던 나와 다르게
진순이는 다 큰 어른 개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한결같이 내가 시골에 갈 때면
짖지도 않고, 마당 끝에서 꼬리를 흔들며
나를 기다려 주었다.
때로는 바람 빠지고 찌그러진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축구공을 물고 와
자랑하듯 내 앞에 멈춰서
마치 이거 보라며 자랑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며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옆에 있는 허스키를 쓰다듬으면
삐쳐서 돌아앉아 있던 모습이 정말 귀여웠다.
대학생이 된 후 본격적으로 시작한 사회생활에 지치고
사람들 사이에서 받은 상처가 깊어질 때면
빨리 주말이 되어서 시골에 가 진순이랑 놀고 싶은 마음이 컸다.
사람은 사람을 배신하지만
개는 절대로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이 정말이었다.
한결같이 나를 잘 따랐던 진순이에게
괜스레 푸념을 늘어놓으면
진순이는 헤벌쭉 웃는 얼굴로 내 얼굴을 유심히 쳐다봤다.
그때만큼 세상의 피로가 다 풀렸고
나답게 숨을 쉴 수 있었던 것 같다.
대학교 졸업 후 나는 취업 준비로 바쁜 나머지
시골에 자주 방문하지 못했다.
내가 27살이 되던 해,
진순이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가족들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나머지
산책을 나간다는 핑계로 밖에 나와
한참을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
진순이가 내게 있어서
사람에게 지쳐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었던 소중한 존재였다.
진순이 덕분에 나는 힘든 인간관계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사람들이 내게 등을 돌려도 진순이만큼은
언제나 나를 반겨주었던 친구였다.
늦은 오후가 되면 마당에서 함께 놀던 진순이가 떠오른다.
헤벌쭉 웃는 표정과 살랑살랑 흔들던 꼬리는
지금도 나에게 밝은 에너지를 주곤 한다.
늦은 오후 그 붉고 따뜻한 빛 속에
진순이가 웃으며 나를 기다리는 것 같다.
그 빛은 내 마음속에서 가넷처럼 깊고 선명하게 반짝인다.
나는 진순이와의 즐거웠던 추억을 간직한 채
오늘을 살아가기 위해 버스에 오른다.
사람들 사이에서 힘들고 지쳐도
내 소중한 친구 진순이를 떠올리면
눈시울이 붉어지고 그때의 행복한 기억에 잠길 수 있다.
진순이가 나에게 남겨준 마지막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