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색과 토끼를 좋아했던 아이
6살이었던 나에게 어떤 보석을 좋아하냐고 물으면
난 시트린을 좋아한다고 말했을 것 같다.
황수정이라고도 하는 노란 빛깔의 보석을 보면
노란색, 토끼 그리고 그림을 가장 사랑했던 아이가 떠오른다.
다시 만날 수 없는 그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나에게 남겨준 것은
노란빛의 밝은 에너지였다.
어둡고 무거운 세상에서 버틸 수 있도록
마음을 환하게 비춰주는 어린 시절 속의 행복한 기억.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
나는 노란색에 사로잡혀 있었다.
색종이를 고를 때도, 블록을 고를 때도,
크레파스를 잡을 때도 늘 노란색을 먼저 집었다.
그리고 동물을 정말 좋아해서
그 시절 내 스케치북은 언제나 노란 토끼로 가득했다.
당시 미술을 전공하고 있는 사촌언니에게
매번 토끼를 그려달라고 졸랐고
언니가 그려준 토끼를 따라 그리느라
크레파스 심이 다 닳을 때까지 종이를 채웠다.
가끔 언니는 새로운 표정의 토끼를 그려 주었고
나는 그걸 또 따라 그리기도 했다.
언니의 토끼 그림을 따라 그리며
난 내가 그림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내 어린 시절 속에 한 장의 노란 토끼 그림을 남길 수 있었다.
사촌언니는 토끼 2마리를 키우고 있었는데
빨빨이와 겔겔이라는 아기 토끼 두 마리다.
빨빨이는 예민하고 민첩해서 지은 이름이었고
겔겔이는 순하고 무던해서 지은 이름이라고 했다,
빨빨이는 새하얗고 사나워서 만지지 못했다.
연한 갈색의 겔겔이는 내 품에 안겨도 가만히 있었다.
나는 겔겔이를 안고 집 안을 돌아다니며
좋아했던 동물인 토끼와 친구가 되었다는 행복한 생각을 했다.
그때의 행복은 아직도 내 마음 어딘가에 따뜻하게 남아 있다.
그 시절의 노란 토끼들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서 뛰어다닌다.
힘든 날이면 그때의 크레파스를 꺼내는 것처럼
나를 조금 더 밝고 가볍게 만든다.
사촌언니의 그림, 겔겔이 의 보드라운 털,
종이 위를 채우던 노란색의 흔적들이
내 하루에 작은 햇살처럼 스며든다.
노란색은 지금도 내가 좋아하는 색이다.
시트린의 노란빛을 보고 있으면
그 시절의 웃음과 따뜻함이 되살아나
나에게 긍정의 에너지를 주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햇살 속에서 다시 눈을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