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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ggudari Apr 12. 2024

변호사 비용을 아끼지 말아야 하는 이유


 "원고의 주장을 피고의 이익으로 원용합니다"



 원고가 제출한 서면은 엉망진창이었다.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고 혼자서 소송에 임한 원고의 주장은 변론이라기 보다는 읍소에 가까웠다. 원고의 패인은 그가 감정적인 사람이라는 것이었는데, 원고는 자신이 얼마나 억울한가를 호소하다가 오히려 그 과정에서 피고측에게 유리한 정보를 모두 말해버렸다. 자신도 모르는 채 피고가 승소할 수 있도록 '자백'을 한 셈이다. 



 피고 측 변호사였던 내가 고민했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나는 곧바로 원고가 주장하는 내용을 모두 인정하고 이를 피고의 이익으로 원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원고는 억울한 마음에 서면을 제출하였다가 약점을 노출했고, 나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물어 뜯었다. 이 사건은 법리만 놓고보면 높은 확률로 우리가 패소하는 사건이었는데 결과는 7:3으로 우리가 (일부)승소하게 되었다. 



 재판은 꽤 기술적인 측면이 있다. 어떤 법리를 주장할 지, 사실 관계는 어디까지 공개할 지, 어떤 증거를 어느 타이밍에 제출할 지, 어떤 주장을 해서는 안 되고 어떤 주장은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니는 지 - 같은 소송 실무는 순간 순간의 냉철한 판단을 요한다. 예컨대 결정적인 증거들을 처음 소송을 제기할 때 모두 제출해버리는 것과, 상대방이 거짓말로 항변하면 그때 비로소 제출하여 상대방의 거짓말을 정면에서 반박해버리는 것.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재판장의 심증 형성이나 재판의 기세 측면에서 후자가 압도적으로 유리한 것은 굳이 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소송 기술들은 정해진 가이드 라인이 없는 데다 사건마다 다르게 적용되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이것들을 모두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러니까 법리를 다투는 사건에서 변호사 없이 상대방 변호사와 법정 다툼을 벌이는 것은 내 패를 모두 공개한 채로 포커를 치는 것과 같다. 그리고 변호사들은 자신의 패를 모두 보여준 상대방의 돈을 따내는 일에 그다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당신이 홀로 재판을 시작한다면, 상대방 변호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당신의 무지(無知)를 물어 뜯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러니 송사에 휘말렸다면 변호사를 찾아가는 것이 좋다. 재판에서 져서 속이 쓰릴 일은 생길 지 몰라도, 이길 수 있는 재판을 패소해서 속이 쓰릴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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