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사회는 법으로 이룰 수 없다

by Healing Yan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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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나무들은 공평한 조건에서 살아가지 않는다. 어떤 나무는 풍부한 햇빛과 물을 먹고 자라난다. 어떤 나무는 햇빛이 거의 들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태어난다. 하지만 햇빛이 부족한 지역에 태어난 나무는 불평하지 않는다. 그나마 햇빛이 들어오는 방향으로 몸을 틀고, 가지와 나뭇잎을 늘려 본인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사회가 개입하여 나무를 뽑아 전부 좋은 자리로만 이동시키면 어떻게 될까? 환경이 망가지는 것은 물론이고 나무 간의 보이지 않는 치열한 생존 다툼이 시작된다. 분열과 갈등은 역설적으로 심화되고 생존은 더욱 빠듯해진다.


같은 물리조건 속에 살아가는 우리 사회 역시 다르지 않다. 각자가 본인 자리에서 해야 할 사명을 잊고 감정에 호소하여 평등과 분배를 추구한다면 갈등만 커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물리적 조건의 세상은 언제나 모순이 발생하고 에너지는 공평하게 공급되지 않는다.


평등에 대한 추구가 본질적으로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것의 달성 여부는 오직 개인에게 달려있다. 자기 자신과 주변환경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뿌리를 내려 사는 법을 배운다면, 악조건 속에서도 좋은 조건의 토양에서 자라난 나무처럼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나무를 좋은 위치로 옮길 수 있고 물을 주는 권한을 가진 '누군가'에게 모든걸 통제 받는다면. 나무는 스스로 토양에서 영양분을 뽑아내는 능력은 감소하고 누군가가 제공하는 물에만 의존하는 의존성은 극대화 된다. 자립성이 약해진 나무는 성장을 멈추고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 누군가는 왕의 권력을 갖게 되는것이다. 그것은 진정으로 나무를 위한것이 아닌 권력의 독점과 왕권 체제의 부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