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해(sunny)
유방암인 내가 앞으로 5년간 여성호르몬 억제약을 먹고 2년간 난소억제주사를 맞는거에 대해
반대했던 엄마와 한 동안 연락을 하지 않고 각자의 생활에 충실했다.
그렇지만 엄마가 4월 20일경 이사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 그냥 지나치면 안 될 거 같아 내가 먼저 문자를 보냈다.
“이사 날짜 정해졌어?”
“4월 25일 이사야. 기도 끝나고 9시에 문자 할게”
엄마는 독실한 천주교신자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아빠가 대장암으로 돌아가신 후부터 더 극성이 되었고 난 그런 엄마를 지금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저녁 9시가 되었고 문자를 하겠다는 엄마는 내가 문자를 보낸 거 보니 기분이 풀린 거 같아 보였는지 훅 들어온다.
“통화하고 싶은데” 라고 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는 “응, 전화해도 돼.” 라고 답장하였다.
엄마는 역시나 시작부터 종교얘기였다.
엄마의 이삿날은 날씨가 좋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좋은 날짜를 선택해 준거라며 즐거워 보이셨다.
별 대꾸를 하지 않은 채 듣고만 있었는데 엄마가 뜸을 들이기 시작한다.
“너에게 이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는데... 꿈을 꿨었어.”
천안 S대학병원에 검사결과를 들으러 같이 가기 전 날 밤에
나뭇가지가 바닥에 쓰러질 정도로 세찬 비가 내리는데 너랑 엄마는 처마 밑에서 보고 있던 꿈이야.
근데 아빠가 대장암 진단 받을 때도 똑같은 꿈을 꾸었었어.
“엄마가 아빠 꿈 말했었나?”
“글세... 20년이 지난 일이어서 그런지 엄마가 말했는지 안 했는지 기억이 안 나네.”
그리고 아빠가 돌아가시기 하루 전 날에는 계곡에서 모르는 여자가 아빠에게 이리오라고 손짓을 하였고
아빠가 빨려 들어가서 엄마가 막대기를 주며 계곡에서 나오라고 했는데 결국 못 나왔어. 그렇게 아빠는 하늘나라로 가셨지...”
이 얘기를 들은 시간은 저녁 9시를 넘어 가는 혼자 있는 집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약간 무섭긴 했지만 엄마 말을 끊지 않고 계속 듣고 있었다.
엄마는 평소 꿈에서 예지를 해준다며 꿈을 잘 믿는 편이었다.
난 매일 꿈을 꿔도 그런 거 전혀 없던데
“최근에 엄마가 꿈을 꾸었는데 ‘오뚜기 성당’ 이 나왔고 거기서 엄마가 빨간 열매를 따고 있었어. 이건 좋은 꿈이지.”
“너무 신기하지 않니? 성당 이름이 오뚜기래. 딸이 유방암 치료 잘 받고 오뚜기처럼 일어난다는 말 아닐까?”
엄마는 들떠서 꿈 얘기를 하시는데 난 아무대답을 하지 않았다.
‘오뚜기’ 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난 ‘오뚜기 카레’ 가 생각났고 엄마의 꿈 해석엔 피식 웃음이 나오려고 하는 걸 참았다.
뭐, 열매를 딴다는 건 수확과 결실인데 이건 엄마 말대로 좋은 꿈인 듯
딸에게 꿈 얘기를 해야 되나 말아야 하나 고민 했는데 오늘 이렇게 말하니 속이 시원하다며 엄마는 묵은 체중이 내려가는 것 같다고 말하였다.
그 정도였다니, 진작에 말씀하시지...
희한하게 직장생활 하는 동안 말로 상처를 많이 받고 훌훌 털어버리지 못해 나 자신이 힘들었는데
엄마 말에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게 참 잘 된단 말이야~
그래서 별로 타격감이 없었다.
나쁜 딸이다.
수화기 너머 엄마 혼자 말하고 내가 대답이 없자 왜 말이 없냐고 하신다.
그제야 내가 침묵을 깨고 말했다.
“응, 듣고 있어.”
“나도 할 말이 있는데...”
“K보험사에 연락해 보니 내가 1년 간 요양병원을 갈 수 있고 금액을 따져보니 6개월 정도 입원해 있을 수 있겠더라고.”
“그래서 다음주에 요양병원에 가. 1주일간”
“몸 상태가 괜찮아서 수원 집 근처 요양병원 가서 가끔 외출증 쓰고 집에도 오고 병원 앞 산책도 하려 했는데 보험회사에서 불시에 점검을 온다고 절대 안 된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아는 사람이 충주 W요양병원에 한 달 간 다녀왔는데 거긴 병원에 공원이 포함되어 있어서
내가 걷고 싶을 때 걸을 수 있다고 해서 여행 간다는 기분으로 다녀올게.”
“그래, 딸이 어련히 잘 알아보고 선택했겠지. 잘 다녀와.”
“그런데, 장거리 운전은 아직 무리지 않아?”
“내비 찍어보니 수원집에서 충주 W요양병원 까지 2시간 걸린다고 나오는데 1시간 운전하고 휴게소에서 쉬고 가면 될 거 같아.”
사실 엄마에게 한 가지 더 말하려고 했는데 참았다.
요양보호사 자격증 공부를 시작한다는 얘기였다.
아픈데 무슨 공부냐며 의자에 장시간 앉아 있는 것 자체가 힘들 텐데
학원 가면 쉬고 싶을 때 마음대로 못 쉴 거 라며 엄마의 잔소리 폭격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원래 내 스타일대로 저지르고 난 후 말해야지!
“엄마, 나 요양보호사 합격 했어~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