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해(sunny)
유방암 재발과 전이 확률을 줄여주는 여성호르몬 억제제인 ‘타목시펜’을 복용한 지 일주일 정도 되었는데 걱정했던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았다.
굳이 꼽자면 끈적한 질 분비물이 나오고 눈이 좀 피로해서 작은 화면인 휴대폰을 장시간 보지 못하는 정도였다.
아직 일주일 만에 약 부작용이 없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이 정도 컨디션이면 공부가 가능하겠다 싶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일을 한 번도 쉰 적이 없었기에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만 있는 게 고역이었다.
정부에서 교육비 50% 를 지원해 주는 ‘내일 배움 카드’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요양보호사를 양성하는 교육원은 여러 곳 있었지만 커리큘럼은 동일하기에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요양보호사 자격증반을 신청하였다.
주간반, 야간반, 주말반으로 직장 다니는 사람들도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개설이 많이 되어 있었다.
난 지금 일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평일엔 운동과 식이요법의 루틴을 지키고 싶어 한 달에 2번 토요일 수업으로 6월까지 진행되는 2달 코스를 신청하였다.
그런데 수강생이 모이지 않아 폐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여기서 포기할 순 없었다.
2순위로 생각해 둔 H요양보호사 교육원에 전화를 하니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
10분 만에 신청을 마치고 다시 전화를 걸어 수강신청이 잘 되었는지 확인 후 수업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바로 당장 내일부터 수업이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으면 원래 80시간을 들어야 하는 교육을 50시간만 들어도 되고
그만큼 교육비도 적으니 나처럼 사회복지사 또는 간호사분들이 하나쯤 가지고 있는 자격증이었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지금 당장은 아니고 50-60대가 되면 쓸모가 있을 거라 생각해서 지금처럼 시간이 있을 때 따 놓고 싶었다.
쉿! 우선 엄마에겐 요양보호사 공부한다는 것은 비밀로 하고
4월 13일 토요일
벚꽃은 거의 져 가는 날씨 좋은 봄날에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의자에 앉아 있어야 한다는 약간의 침울함이 있었지만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설렘이 더 커서 아침에 눈이 빨리 떠졌다.
요양보호사 학원은 우리 집에서 운전해서 20여분 정도 걸리는 곳으로 같은 수원에 있지만 약간 거리가 있었다.
첫날은 초행길이기도 하고 주차장소도 봐야 하니 서둘러 간다고 했는데 거의 딱 맞춰서 학원에 도착하였다.
토요일 아침이어서 그런지 번잡한 수원역을 통과해야 했지만 그리 길이 막히진 않았다.
그래도 다음엔 조금 더 빨리 집을 나서야겠구나 싶었다.
앉고 싶은 자리에 자유롭게 앉으라 하여 중간쯤에 앉았고 한 손으로 들기에도 무거운 대학 전공책 보다 훨씬 두꺼운 이론서 한 권과 기출문제만 뽑아 놓은 얇은 책을 받아 들었다.
말끔하게 정장을 입은 55세 정도로 보이는 남자분이 앞으로 나오시더니 본인을 H요양보호사 교육원의 부원장이라고 소개하면서 자신의 살아온 길을 이야기하였다.
사업을 하였고 접대로 인해 술을 많이 마시면서 간에 혹이 생겨 3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고 하였다.
15년 다니던 회사를 정리하고 사람들과 인사를 하며 삶을 정리하려 했는데 다행히 암은 아니고 4cm 혹으로 지금까지도 떼지 않고 추적관찰 중이라고 하였다.
음... 약간 드라마 같은 전개이긴 한데 믿기로 하지요 ㅋㅋ
좋아하던 술과 담배를 딱 끊고 하던 사업을 정리하고 동업을 했는데 친한 사람끼리는 동업하지 말라는 말이 딱 맞았다며
6개월부터 삐걱거리더니 꾸역꾸역 1년을 채운 후 각자 갈 길을 갔다고 하였다.
그러다 옆에서 아내가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 보는 건 어떠냐고 하여 떠밀려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생전 봉사활동이라고는 안 해보았는데 사회복지사 실습을 하면서 봉사의 기쁨을 알게 되었고 사업했을 땐 돈을 회수하지 못해 빚을 졌는데
이 분야는 정부돈으로 사업을 하니 못 받을 일이 없다는 안정성에 매력을 느끼셨다고 한다.
사회복지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 늦은 나이에 공부를 하니 그 당시에는 자격증만 손에 쥘 생각에 솔직히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지금은 H요양보호사 교육원 부원장으로 9년을 지내고 있는데 센터를 차리고자 마음먹으면서 왜 그때 사회복지사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는지 후회되었다고 하였다.
건강의 위기를 겪으며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요양보호사 교육원 부원장님의 얘기를 들으면서 지금 내가 투병 중인 유방암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되었다.
“다시 취업할 수 있을까?”
“취업한다면 다시 사회복지사로 가는 게 맞는 걸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대학에서 배우고 지금까지 쌓아온 커리어가 사회복지인데 다른 곳으로 가는 건 더 어렵지 않을까?”
H요양보호사 교육원 부원장님의 본인 소개가 엄청 길었는데 말씀을 워낙 재미있게 하셔서 즐겁게 들었다.
여기서 끝나면 좋으련만
“이제 제 얘기는 여기서 줄이고 첫날이니 15명 교육생들의 자기소개 시간을 가져 볼까요?”
- 2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