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노랑이

수전노

by 노작

어른들은 그 아저씨를 '노랑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따라 노랑이, 아니면 노랑 아저씨라고 부르죠.



노랑 아저씨는 산 아랫마을에 삽니다. 아랫동네는 부자 마을입니다. 학교도, 시장도, 새로 지은 놀이터도 다 아랫동네에 있거든요. 그리고 노랑 아저씨는 섬유 공장을 운영하는 사장님입니다. 우리는 노랑 아저씨에 대해 잘 압니다.



“여어, 꼬맹이들. 내가 말이야. 저기 저 큰 공단 사장이란 말이다.”



노랑 아저씨는 친구가 우리 밖에 없습니다. 내가 친구들과 바람개비 돌리며 뛰어가다 아저씨를 만나면, 어김없이 우리를 붙잡고 자기 이야기를 한 보따리 풀어놓더랍니다. 그건 필시 외로워서 그런 겁니다. 어른들이 그랬어요. 노랑 아저씨는 외로운 사람이라고. 외롭다는 건 세상에 혼자된 기분이래요. 노랑 아저씨 공장 직원이 100명도 훌쩍 넘는다던데, 주변에 사람이 많아도 외로울 수 있나 봅니다. 그런 아저씨를 보면 어쩐지 마음이 아파져서 엄마한테 물어봤습니다.



“엄마, 노랑 아저씨 싫어해?”



엄만 그게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냐고 했습니다. 내가 다시 말했습니다.



“노랑 아저씨, 조금 재미없지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았어. 근데 어른 친구가 없는 것 같아. 엄마가 같이 놀아주면 되잖아.”



엄마가 어색하게 웃었습니다. 나는 압니다. 엄마는 뭔가 곤란한 일이 생기면 한 쪽 입꼬리를 삐죽 올린답니다.



“싫어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야. 어른들은… 좀 더 복잡한 사정이 있어. 그리고, 노랑 아저씨랑은 가까이 안 지내는 게 좋아. 나가서 친구들이랑 놀다가 해지기 전에는 들어와. 엄마가 마늘 넣은 소고기 미역국 해줄게.”



나는 더 묻고 싶었지만 엄마의 입술을 보곤 입을 다물었습니다. 어른들은 참 힘들 것 같습니다. 도대체 무슨 사정이 있길래 친구 하나 마음대로 못 사귀는 걸까요? 일찍 어른이 되고 싶다는 소원을 조금 미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지금처럼 천진하게 놀기만 해두 기쁜데, 어른들은 어렵게 삽니다.



나는 윗마을 헌 놀이터로 갑니다. 아랫동네 새 놀이터는 초원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만 쓸 수 있다고 된통 혼나서, 이제는 윗마을 놀이터에 갑니다. 삐걱거리는 쇳소리와 껌딱지 가득 붙은 미끄럼틀, 쩍쩍 갈라진 나무까지. 어느 한 군데 멀쩡한 곳 없지만 우리는 이곳을 사랑합니다.



무엇보다도 여기에는, 노랑 아저씨가 있습니다. 술 냄새 풍기는 노오란 얼굴에 붉어진 두 뺨까지 뒤덮은 성성한 수염들. 아저씨는 우리 선생님과 나이가 같지만, 흘깃 보면 꼭 우리 할아버지 같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저씨는 벤치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습니다. 아저씨의 얼굴은 희뿌연 연기에 가려졌다 다시 드러나곤 합니다. 얼핏얼핏 드러나는 아저씨는 꼭 울 것만 같은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 아저씨는… 오늘 도저히 살 수가 없구나. 오늘까지는, 적어도 오늘까지는 내가 없어졌어야 했다.”



*



아저씨는 좀체 자신의 것을 남들과 나누는 법이 없었습니다. 돈이든 시간이든 관심이든요. 그 점이 아저씨에게 커다란 슬픔을 남겼습니다.



5년 전, 아저씨에게는 다섯 살 먹은 딸 하나와 젊은 아내가 있었습니다. 당시에 아저씨는 짠돌이로 아주 악명이 높았습니다. 자정이 넘어서야 퇴근하기 일쑤였고, 공장에서 잠을 청한 날도 잦았습니다. 집에 도저히 붙어있는 법이 없어서 공장 인부들이 억지로 집에 보내곤 했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아이와는 시간을 거의 보내지 못했었고, 아내는 혼자서 모든 책임을 도맡았습니다. 딸아이는 점차 아빠의 얼굴은 잊어갔고 사실상 그 집은 편부 가정이나 매한가지였습니다.



아저씨가 단 한 번이라도 먼저 생일 축하한다,는 말은 했더라면 달라졌을까요. 돌아오던 아이의 다섯 번째 생일에 아내는 목을 매었습니다. 그날 아저씨는 새벽이 다 되어 집에 돌아왔습니다. 한 손에는 케이크를 들고요.



“어이, 안사람! 나 왔네… 문을 왜 안 열어!”



술에 잔뜩 취해 휘청거리다 아저씨는 쭈그려 앉습니다. 상자에서 케이크를 꺼내 초에 불을 붙입니다. 목이 메인 소리로 끝까지 생일 축하 노래를 부릅니다. 그러다 아저씨는 현관 문 앞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문 너머로는 아이의 울음소리만이 울리고 있지만 아저씨는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결국 마을 사람들이 타다 남은 초와 촛농으로 범벅이 된 케이크, 그 옆에서 웅크리고 있는 아저씨를 발견했던 것입니다.



“네 어매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어. 내 돈만 보고 결혼한 거야. 우라질 년… 그럴 거면 이 수전노 한 번 제대로 구워삶아 보고 떠나던가. 니기럴….”



그 이후에도 아저씨는 여전히 집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필리핀에서 온 스물둘 가정부 하나를 붙여두곤 공장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아내가 떠난 지 꼭 8개월째 되던 날, 우리 아부지가 다급하게 뛰쳐 들어왔답니다. 딸아이가 죽었다고, 지 어매 보겠다고 가정부 한 눈 판 사이에 나갔다가 공장 트럭에 치였다고, 그 가정부는 후환이 두려워 진즉에 집을 떠났더라고….



*



아저씨는 우리가 골백 번도 더 들은 이 이야기를 울며 울며 했습니다. 꼭 올해로 나는 열 살이 됐습니다. 나와 노랑 아저씨네 딸은 한 날 한 시에 났습니다. 딸은 아랫동네, 나는 윗동네에서 태어났지만 그 때문일까요. 아저씨는 나를 볼 때마다 무언가에 찔린 것처럼 아파했습니다.



오늘은 조금 달랐습니다. 텅 비어있는 공갈빵마냥 서성거리다가 입술을 세게 물더랍니다. 피가 비집어 나오는데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두 눈을 홉뜨고 머언 하늘을 바라봅니다. 어둡습니다. 먹구름 낀 하늘이 금방이라도 굵은 빗방울을 흘릴 듯합니다. 하지만 아저씨는 묘하게 편해 보입니다. 희미하게 입가가 진동하며 웃는지 우는지 나는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아저씨는 더듬더듬 주머니를 뒤지다가 검은 지갑을 꺼냅니다. 떨리는 손으로 노란 지폐 몇 장을 쥐여줍니다.



“얘, 오늘은 일찍 집에 들어가거라. 비가 오려나 보다.”



발을 끌며 나는 집으로 향합니다. 멀리 아저씨가 넥타이를 푸는 모습이 보입니다. 곰팡이 잔뜩 슨 그네 위에 넥타이를 동여맵니다. 나는 등을 돌려 집에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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