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모순

by 노작

남자는 크면서 거울 속에서 아버지의 얼굴을 본다고 한다.

나는 조금 이르게 깨달았던 듯하다.

평행선을 달리던 우리는 기울기가 같기 때문이었던-것이다.

그 이야기를 자주 하곤 했다.

무언가 속에 가 닿을 말이 있으면 우리 정말 많이 닮았다, 그러고 마는 것이었다.

지독하게 맞지 않던 우리는 그래서 죽이 잘 맞았을까.

정신과 약을 먹은 지 한 달이 넘어가던 날, 당신은 달리는 차 속에서 그런 말을 했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본인과의 다름을 인정하기 어려웠던 걸까.

모두 나의 시절이 있었지마는 그럼에도 시대가 바뀌었음을 이제서야 알았다는 당신의 차분한 고백.

그 시절에는 학교에다 부모의 최종 학력을 써 보내야 했다. (나는 그대들이 부끄럽지 않다. 부디 알아주기를 바라며.)

당신은 항상 고등학교, 아니면 전문대 졸이라 하면 된다고만 하셨다.

별 중요한 건 아니지만, 중학교, 아니 초등학교는 제대로 나왔는지 의구심이 드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내가 봤던 힘은 뭐였을까.

대기업 인사과 팀장직 낙하산으로 들어가, 그마저도 횡령하다 실직자 된 아버지를.

하우스에 도박 하러 다녀, 이리저리 억센 손에 이끌려 마주한 아버지를.

무능하고 담배나 뻑뻑 피워댔던 아버지를.

집으로 정장 입은 아저씨들이 찾아올 때마다 무릎 꿇어야 했던 원인인 아버지를.

쓸만한 가구면 가구마다 빠알간 딱지가 붙게 했던 아버지를.

뭐가 좋다고, 그것도 남편이라고.

그렇게 한 생애를 헌신적으로 보낼 수 있었을까.

얼마 배우지 못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다.

오직 몸으로 때우는 일 뿐.

그렇게 엄마는 얼마 되지도 않는 푼돈을 쥐고 영원히 끝나지 않을 듯했던 아버지의 빚을 갚아나갔다.

도대체 어떤 마음에서.

아직도 이해할 수 없지만, 엄마는 분명 아버지를 측은해 했다.

그러니 사람인 걸까. 사람이라 그런 걸까.

나는 아버지를 한평생 원망했다.

꼭 내 딸아이 나이 즈음에, 아버지 술 먹고 깽판쳤던 날, 나는 이혼하라고, 그래도 나는 절대 엄마 원망 안 한다고, 엄마가 하고 싶은 걸 찾아서 엄마의 길을 가라고 말했음을 기억한다.

그때 당신이 그런 말 하면 안 된다, 그래도 너희 아버지야, 외쳤던 물기 어린 목소리 또한 기억한다.

엄마는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묻고 싶었지만 단 한 번도 묻지 않았던 질문.

이제 나이가 칠십이 넘어가는데도 여전히 일을 이어나가는 미련한 엄마.

노쇠하고 암에 든 아버지.

그런 것도 남편이라고 어머니는 여전히 아버지를 불쌍해 하더라.

어떻게든 좋은 거 먹이려 애 닳는 당신에 머엉한 찌릿함을 느낀다.

그래서 엄마-하면 새벽 닭보다 바지런히 일어나 우리 형제와 아버지의 도시락을 싸던 조막만한 뒷모습만 떠오르는 걸까.

이제 나는 거울에서 아버지를 본다.

좋든 싫든, 시간이 지나며 그럴 수 밖에 없음을 나는 안다.

근래엔 한참 동안 세면대 거울을 빠안히 바라보는 경우가 잦았다.

이제 나도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 그를 닮는구나.

엄마는 항상 입버릇처럼 그런 말을 했었다.

남자는 죽어도 일하다가 죽어야 한다고, 자꾸만 뇌까리던 그녀의 젊은 모습이 보인다.

그렇다. 그는 아프기 전까지 단 한 번도 일을 쉬지 않았다.

소리 내어 엉엉 울어버리고 말았다.

어쩌면 이젠 나도 그를 이해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아버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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