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유서 1

by 노작

가슴이 답답했고 어느 때엔 삶의 무게에 짓눌려 숨을 바로 쉴 줄을 몰라 했다. 태어나 처음 밭게 내뱉는 것마냥 헐떡이는 게 전부였다. 그리 아등바등 애써 봐야 손에 남는 것 하나 없는데 나는 무얼 바라 살아왔던가. 무슨 대단한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하루하루를 고사 지내는 마음으로 넘겨왔다. 하루에도 수십 번 죽음에 대하여 생각을 했고, 죽음으로서 삶을 반추해 오늘을 가치롭게 하리라는 의도는 추호도 아니었음을-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은 알지 않는가. 아니, 알아야 한다. 그 누구보다도 잘-알아야만 한다. 그것은 어쩌면 나의 숙명과, 죄와, 그에 대한 십자가-를 매고 면류관에서 흐르는 피를 한 손으로 쓸어내리며 감내해가는 언덕을 오르는 무엇이다. 숭고한 정신조차 아니다. 사리분별 어려운 혼탁함으로써 사위를 두른 거대한 장막에 파묻혀 질식하고 있다.


나는 무얼 바라 살아왔던가. 애초에 무얼 바라 살 기회를 쥐여준 절대자는 있었던가. 설사 그가 존재한들 나는 그를 사랑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는 타락해버린 유일한 구원자. 나를 부수고 깨뜨리고 산산이 무너뜨려서 나를 끝을 모르는 구덩이로 밀어 넣은 장본인이다. 손이 발발 떨린다. 이보다 더 멍청하고도 우스운 꼴이 있을까. 나는 우습다. 나는 우습다. 나는 우습다. 비참하게 죽어가는 꼴을 가만 생각해 본다. 얼굴엔 위에서부터 깊게 가로지르는 움푹 패인 손톱자국과, 그 틈을 비집고 나오던 검붉은 선혈이 초라하게 말라붙어있다. 거기엔 흰자위를 내놓으며 눈을 부릅 치켜뜨고 말 없는 혼을 보는 암흑이 있다. 떠뜸, 떠뜸, 운을 떼려 하지만 설익은 문장만이 어설피 흐트러지던 마른 혀 또한 있다. 앙상하게 야윈 뼈만이 살거죽을 비집고 나 여기 있소, 소름 끼치게 울어대는데, 오직 그만이 아름답다. 오직 그만이 살아있다. 오직 그만이 사랑스럽다. 죽어있는 것 중에서 가장 살아있는 것. 분에 넘치게 생동하고 있다. 저 치를 구성하는 것 중에서 단 한 번이라도 살아있던-적 있는 것이 있는가? 살아있음은 무언가... 그럼에도 삶은 무언가... 나는 이제서야 당당히 선언할 수 있노라. 나는 살지 못했으며, 비로소 살게 된다고. 어린아이들아, 울지 말아라. 나는 무언가를 찾으러 갔고, 적어도 그 떠남의 목적은 알게 된 듯하다. 너는 스스로를 가워여 하라. 또 작금의 행태에 노여워하고 그에 대한 반항으로서 할 수 있는 한 가장 열정적인 몸부림으로 불살라라. 울어라. 울어라. 하지만 그 눈물조차 널 꺼뜨리지 못하고 공기 중으로 흩어질 수밖에 없어라.



나는 보았다. 어느 초가을의 해변가 밤바람을. 맵게 뺨을 따리던 바람 탓에 울고 싶어지곤 했다. 그리고 그 뒤에 숨어 가끔은 짠 기운을 맛보았다. 그러던 어제에 나는 영영 눈물을 잃고 만 것이었다. 턱턱 걸려 목뒤로 넘길 수도, 뱉어낼 수도 없었다. 목이 메여와 언어조차 잃어 물거품으로 돌아간 듯했다. 하얗게 알알이 부서져 내려만 간다. 그제야 알았더라. 모든 것에 초연해짐을. 나의 박동과 바다의 맥박을 같게 하고 나를 버렸다. 나를 맡겼다. 모래밭에 밀려온 파도 뒤쫓아 나도 차츰차츰 그가 되었다. 산산이 부서져 더 이상 형체를 알 수 없을 때가 되자, 나는 곧 그였다. 온몸이 물고기들의 지느러미짓에 간지러웠다. 나는 모든 것을 안았고 생명을 잉태함을 넘어서 생명 그 자체였다. 감히 색을 정의할 수 없게 깊었으며, 감히 범할 수 없게 고결했다. 가끔 손가락을 머얼리 뻗어서 모래알을 한 움큼 쥐었다가 핏발이 투명한 당신 위에 살포시 얹는다. 짓궂은 장난이다. 그게 내가 이 세상에 할 수 있는 가장 짓궂은 행동이다. 어떨 때는 이 모든 것이 또한 내 것이 아님에 설울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나지막이 뒤춤에 쟁여두고 모르는 척하곤 했다.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 한다.'

- 모순, 양귀자



그래서 나는 말이다,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으며 남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이것은 단순한 불행일 뿐이다. 나는 그런 존재다. 이 세상에 난 이후로 매 순간이 형벌이었다. 존재 자체가 죄악이었으므로. 그리고 그것이 대단한 불행이지만 동시에 흔한 불행이었으므로. 어디에도 울 수 없었다. 고개를 파묻고 소리 없는 고성을 지를 수조차 없어 가슴 복판에 커다란 구멍이 나고야만 나였다.

태어나지 않음이 최선이다. 그리고 혹여나 태어났다면 자살이 차선이다. 이것은 실낱같은 인간다움을 지키는 마지노선임을 언제나 명심하자. 언제 흔들릴지 모르기에 나는 반드시, 분명히, 존엄히 이 세상을 떠나노라-하고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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