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를 쓰면 쓸수록, 내가 사라지는 기분이 들 때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정작 나를 소모하며 살았던 기록

by 석대

열심히 살지 않은 적은 없었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혹은 스스로 세운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 늘 앞만 보고 달렸다.

무언가를 놓치지 않으려 애썼고, 빈틈없이 채우려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문득 멈춰 서 보니, 정작 그 안의 ‘나’는 텅 비어 있었다.

나는 열심히 무언가를 채우고 있었지만, 동시에 나 자신을 조금씩, 분명하게 소모하고 있었다.


소유가 나를 정의할 때 찾아오는 피로감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소비자로 살아간다. 입는 옷, 먹는 것, 사용하는 물건까지 삶의 거의 모든 것이 상품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 거대한 소비의 물결 속에서 상품은 단순한 도구를 넘어 나를 드러내는 상징이 되곤 한다.

나 역시 무언가를 손에 넣는 순간, 그것이 나를 설명해 줄 것이라 믿었던 적이 있다. 더 좋은 물건, 더 괜찮은 선택이 곧 나의 가치가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소유에 집착할수록 묘한 피로감이 따라왔다. 내가 물건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새 소유물이 나를 규정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무엇을 가졌는지가 나라는 사람보다 먼저 평가되는 순간들 속에서, 나는 점점 나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런 ‘소유의 논리’는 자연스럽게 삶의 다른 영역으로도 옮겨 붙었다. 내가 가진 물건뿐 아니라, 내가 투입한 시간 역시 눈에 보이는 확실한 결과물로 증명되어야만 가치 있다고 믿게 된 것이다.

특히 밤을 새우며 노력했음에도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을 때, 그 허망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쏟아부은 시간과 에너지가 한순간에 증발한 것 같았고, 마치 한 번 쓰이고 버려진 소모품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열심히 산다’는 말이 언제든 나를 소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이미지를 소비하고, 인간을 소모하는 일상


직장과 사회생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지만, 남는 것은 종종 숫자와 성과뿐이다.

그 과정에서의 고민과 감정은 쉽게 지워지고, 사람은 교체 가능한 존재처럼 다뤄지기도 한다.

SNS에서는 또 다른 방식의 소비가 이어진다. 좋아요와 팔로워 수에 마음이 흔들리고, 타인의 시선에 맞춘 내 모습을 포장하느라 에너지를 쏟는다.

사람은 하나의 이미지가 되고, 그 이미지는 끊임없이 소비된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소비사회’라고 분석했다.

무엇을 보여주느냐가 곧 가치를 결정하는 사회.

하지만 그렇게 겉모습을 채우는 데 집중할수록, 우리 안의 고유한 감각과 속도는 서서히 사라진다.

남는 것은 타인이 기대하는 모습뿐이고, 정작 나 자신에 대한 주도권은 점점 멀어진다.


소모되는 세상 속에서 나를 지켜내는 법


타인의 기대에 맞춘 ‘좋은 사람’, 사회적 기준에 부합하는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버텼던 시간들이 있었다.

성취의 기쁨보다 소진의 감각이 먼저 찾아왔을 때, 나는 비로소 멈춰 서서 질문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나를 소모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이 질문은 삶을 단번에 바꾸는 해답이 되지는 않았다. 다만 소비와 소모의 쳇바퀴를 잠시 멈추게 하는 작은 저항이 되어주었다.

나를 지치게 만드는 관계, 의미 없이 반복되는 경쟁에서 한 걸음 물러나는 순간, 비로소 나를 지킬 여지가 생겼다.

나는 이제 더 많이 채우기보다는, 덜 소모하는 삶을 고민하고 있다.

여전히 완벽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나를 계속 잃어버리는 방향으로만 달리지는 않으려 한다.


이 글은 그 시작에 대한 기록이다. 이 소모되는 세상 속에서, 나 자신을 지켜내기 위한 조용한 시도.

당신은 오늘 하루,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무엇을 위해 당신 자신을 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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