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중’이라는 말로 오늘을 미루고 있는 당신에게

머릿속 지옥에서 탈출해 다시 삶의 흐름을 만드는 법

by 석대

여러분은 혹시 ‘준비’라는 이름 뒤에 숨어, 정작 시작해야 할 오늘을 흘려보내고 있지는 않나요? 저에게는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이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높은 담장이었습니다.


나에게는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이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높은 담장이었다. ‘준비 중’이라는 말이 길어질수록 나는 이상할 만큼 무기력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계속 다음 단계를 구상하고 있었지만, 현실은 그저 제자리걸음이었다.


한때 나는 사업에 모든 걸 걸었다. 간절히 열망했던 꿈이 있었고, 그 꿈을 이루겠다는 마음 하나로 버텼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마주한 실패 그 자체보다, 그 이후의 시간이 더 길고 조용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다시 무언가를 해보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나는 곧장 움직이지 못했다. ‘조금만 더 준비되면’, ‘이번엔 제대로 시작해야 하니까’라는 말들이 내 하루를 아주 정중하게 미뤘다.


겉으로는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실은 다치지 않기 위해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 핑계와 회피의 공존 상태였다.


완벽주의는 결코 성실함의 증거가 아니다. 도달할 수 없는 신기루를 설정해 두고 시도 자체를 원천 봉쇄하는 지능적인 회피일 뿐이다. 완벽해지기를 기다리며 시작하지 않는 것보다, 서툴게라도 시작하는 편이 훨씬 위대하다는 사실을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그렇게 실패를 방패 삼아 점점 나태해졌고, 어느 순간 멈춰 서게 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마음은 불안했지만 몸은 편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미루는 삶에 점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남는 건 오로지 시간뿐이니 ‘조금 있다가 하지’, ‘내일 하지’라며 할 일을 미루는 습관이 독초처럼 자라났고, 어느샌가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하며 ‘쉬는 청년’이 되어 있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비겁한 도피였으며, 나를 보호하느라 정작 살아내야 할 오늘을 통째로 허비하고 있었던 셈이다.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아주 사소한 외출조차 눈치가 보이고 도망 다니는 듯한 기분이 들던 어느 날, 이대로 나의 안타깝고 빛나는 시간을 허망하게 소비하는 것에 대한 공포가 나를 덮쳤다. 무작정, 어쩌면 아무 생각 없는 것이야말로 가장 용기 있는 행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정말 오랜만에 조금이라도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나의 쓸모 있음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런 순간들이야말로, 내가 놓치고 있던 가치 있는 시간이 아닐까?


그렇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에는 지원조차 쉽지 않았다. 나이라는 사회적 인식, 그리고 서울의 4년제 대학교를 졸업해 지원금까지 받아가며 사업을 했던 내가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처량해 보였다. 왠지 모르게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참으로 부끄러운 아집이었다.


어쩌면 아르바이트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그 찰나의 순간까지도 용기가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 아르바이트 구인 구직 사이트에서 리스트를 보며 ‘이건 힘들 것 같아서’, ‘저건 나랑 안 맞을 것 같아서’라며 지레짐작으로 회피했다. 오로지 나의 입맛에 맞는 일만을 고르고 고르다 보니, 나를 뽑아줄지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혼자 김칫국을 마시며 북 치고 장구 쳤던 것이다. 그렇게 내가 원하는 목록을 추리고 나니 남는 게 몇 개 없었고, 지원해도 연락이 올 리 만무했다. 그때부터 그냥 될 대로 돼라며 나름 공격적으로 지원을 시작했다.


이 상태로 시간을 더 보내는 게 차라리 더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였다. 운 좋게 연락이 온 행사 지원 아르바이트. 오랜만에 일을 하러 간다는 사실에 긴장과 설렘이 동시에 밀려왔다.


아침 일찍 사람들 틈에 섞여 지하철에 올라탔다. 무언가를 증명해야 한다는 부담 대신, 다시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다는 묘한 해방감이 올라왔다. 흔히 말하는 ‘지옥철’을 잊고 살다가 오랜만에 몸을 담아보니, 매일같이 이 흐름을 견디며 자기 몫의 하루를 감당하는 직장인들에 대한 경외심이 들었다. 이동 시간조차 버거워하는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동시에 내가 다시 이 세계의 톱니바퀴 안으로 들어왔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분주한 행사장에서 무거운 짐을 옮기고, 방문객을 안내하거나 안전 동선을 관리하는 등 여러 가지 일을 수행하다 보니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생각들이 잠잠해졌다. 복잡한 질문보다 매 순간 해야 할 동작 하나가 더 분명해질 뿐이었다.


머릿속의 지옥을 탈출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거창한 논리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몸을 움직여 현실의 땀방울을 흘리는 것이었다. 생각으로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에서는 그 어떤 옳은 말도 나를 구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어쩌면 용기였을지 모르는 그런 판단과 순간들이 거창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다만 막상 해보니 별것도 아닌 것을, 스스로를 옹졸하게 만들 만큼 좁은 시야로 바라보다 보니 겁이 났고 불안감이 커졌던 것 같다.


그날 이후 나는 삶을 크게 바꾸겠다는 비장한 말을 하지 않게 됐다. 대신 넘어지지 않을 속도로 계속 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아르바이트라도 시작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해 보일지 몰라도, 멈춰버린 삶을 다시 가동하려는 사람에게는 그것조차 큰 용기가 필요하다.


혹시 주변에 다시 시작하기 위해, 혹은 여러 이유에서라도 아르바이트를 선택하는 사람이 있다면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내주었으면 한다. 누군가에게는 '놀면 뭐 하니'라는 생각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는 일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선택을 넘어 자신의 시간을 더 이상 흘려보내지 않겠다는 가장 정직한 결단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유가 어떻건 간에, 결국 모든 노동은 박수받아 마땅하다. 마음이 답답하고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면, 어떤 이유라도 좋으니 일단 몸을 움직여보길 권한다. 아르바이트 현장의 거친 땀방울은 생각이 만들어낸 머릿속 지옥을 잠시나마 잠재워 줄 것이다.


완벽해진 뒤에 시작하는 삶은 오지 않는다. 삐걱거리는 상태로라도 움직일 때만 다음 장면이 열린다.


나에게 아르바이트는 단순한 노동의 의미를 넘어섰다. 정답을 찾아서가 아니라 몸을 먼저 움직였기 때문에 멈춰 있던 시간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삶은 설명으로 바뀌지 않는다. 아주 사소한 선택 하나가 다시 흐름을 만든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조용한 계속’을 실천 중이다. 주어진 오늘을 정직하게 사용하며, 기꺼이 나의 내일을 맞이한다. 그 흐름 안에 다시 서 있는 것.


아직 모든 것이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나는 다시 그 흐름 안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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