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bbatical Journey 26년 02월 24일
이 땅에서의 삶이 단 3일 남겨졌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 땅을 떠나는 준비란 무엇일까?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나누고, 끝내지 못한 일들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여정을 위한 채비를 하는 것. 그러나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을 적어 내려가다 보면, 그것을 모두 완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 지금 내게도 단 3일이 남겨져 있는 것과 같다. 단지 해외 이사를 앞두고 있을 뿐인데도, 해야 할 일은 끝이 없고, 적지 않은 비용이 들며, 피로와 긴장감이 동시에 밀려온다.
언젠가 하와이 빅아일랜드에서 에어비앤비를 통해 한 노부부의 집에 머문 적이 있다. 그분들은 우리 부부를 반갑게 맞이하며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6.25 한국전쟁에 참전하셨던 본인의 기억들 그리고 부모로서 자녀들 이야기는 항상 빠지지 않는다. 끝으로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을 유쾌하게 이렇게 표현하셨다.
“우리는 방을 항상 깨끗하게 정리해요. 쓰레기통도 자주 비우고요. 우리가 떠난 뒤 사람들이 우리 집에 들어와 흉볼까 봐서요. ㅎㅎㅎ”
그분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집과 물건들을 더 이상 ‘자신의 것’으로만 여기지 않으셨다. 언젠가 누군가 들어와 정리하게 될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계셨다. 이미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 그래서 그분들에게는, 그 순간이 언제 오더라도 기꺼이 떠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나는 빼곡히 적힌 할 일 목록을 바라보며 한숨을 쉰다. 조급함이 밀려온다. 이 땅에서의 일에 매여 있는 동안, 정작 다가올 새로운 삶을 준비할 여유는 전혀 없다.
아이와 마주 앉아 앞으로의 변화에 대해 차분히 이야기할 시간도 없다. 논문 수정, 학회 초록, 행정 업무, 과제 종료 보고서, 신규 과제 신청, 자동차 이전, 해외 이삿짐 준비…. 이 모든 일을 마치고 나면 나는 모든 힘을 다 써버린 채 쓰러질 것 만 같다.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마음의 빈 공간은 없는 듯하다.
준비되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다. 기한 내에 얼마나 빨리 일을 끝낼 수 있는가 보다, 과연 미리 준비된 사람이 될 수 있는가를 질문해야 한다.
언젠가 모든 것을 뒤로한 채 영원히 떠나는 날, 남겨진 나의 자리가 깨끗하기를, 봄바람에 실려 오는 라일락 향기처럼 은은하게 남아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때, 새로운 세상을 향한 기대가 내 안에 가득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