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03월 14일 | 두 개의 청소기

Sabbatical Journey 26년 03월 14일

by 꿈꾸는 미래

실리콘 밸리의 하늘은 참 파랗다. 해가 지는 무렵이면 하늘 한쪽 끝에서 반대편 끝까지 붓으로 분홍색 물감을 그은 것처럼 아름답다. 아침 공기는 언제나 상쾌하고, 저녁에도 공기는 맑았다. 한국에서는 공기를 덜 마시려고 숨을 참는 때가 많았지만, 이곳에서는 오히려 깊게 들이쉬는 순간이 많다.


그러나 집 안에 들어서면 분위기는 달라진다. 이곳에 온 지 보름이 되어가지만, 여전히 널브러져 있는 물건들을 보면 마음이 어지러워진다. 정리는 쉽지 않아도 깨끗하게 살고 싶은 마음에 자주 물건들을 닦는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닦을 수 없는 곳이 있다. 바로 카펫이다.


카펫 생활은 처음이라 잘 몰랐지만, 부드럽게 밟히는 이 바닥 깊은 곳에 먼지와 세균, 어쩌면 작은 벌레들까지 숨어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이웃집 아주머니와 우연히 마주쳤다. 처음 만난 이웃과 나눈 대화 주제로는 조금 엉뚱했을까? 나도 모르게 카펫 청소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아주머니는 혼자 살기 때문에 카펫이 깨끗해서 청소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청소하지 않은 깨끗한 카펫(?)이라는 다소 낯선 이야기였다.


그날 이후 나는 Amazon 온라인 몰에서 카펫용 청소기를 찾았다. 중고 제품도 고려했지만, 청소기만큼은 깨끗한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새 제품을 구입했다. 처음 보는 형태의 습식 청소기였다. 과연 이걸로 깨끗해질까? 며칠 동안 거실 한쪽에 놓아둔 채, 나름 ‘과학적으로’ 고민해 보았다. 뭔가 부족해 보였다.


결국 본격적으로 검색을 해보고, 인공지능 도움까지 받아, 카펫 청소에는 ‘진공청소기’가 먼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냈다. 먼저 진공청소기로 표면의 먼지와 부스러기를 제거한 뒤, 습식 청소기로 세척을 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결국 진공청소기까지 추가로 구입했다.


드디어 두 개의 청소기를 갖추고 첫 카펫 청소 준비를 마친 것이다. 진공청소기를 밀고 당기자마자 놀랐다. 그 큰 먼지통이 순식간에 가득 차기 시작했다. 헤파 필터마저 뚫고 먼지가 다시 나올 것 만 같았다. 이대로라면 청소기 자체가 막혀버릴 것만 같았다. 그 위에서 우리는 맨발로 걸어 다녔고, 아이들은 며칠 동안 뒹굴며 놀았던 것이다.


이어서 습식 청소를 해보았다. 배수통에는 마치 공장 폐수처럼 검은 물이 차올랐다. 설명서대로 세면대에 버리려 했지만, 세면대에 고인 검은 물은 내려가지 않았다. 일회용 장갑을 끼고 손으로 만져보니, 그것은 물이 아니라 먼지와 흙이 섞인 진흙 같았다. 결국 손으로 직접 퍼내야 했다.


청소를 마치고 저녁이 되어, 나는 거실 한가운데 놓인 두 개의 청소기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이곳에 온 지 보름이 지나서야, 비로소 ‘청소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동안 학교행정, 운전면허, 은행 업무, 아이들 예방접종과 학교등록, 자동차 마련 등 급한 일들을 하나씩 해결해 왔다.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가 되는 듯하다.


시간이 지나 이곳의 삶에 익숙해질수록, 조금 더 많은 시간이 내게 주어질 것이다. 최근 연구에서 실패를 겪었지만, 나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곳에서 펼쳐질 어떤 일들이 마음으로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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