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를 여는 말씀 묵상과 짧은 기도를 한 후 브런치 스토리 글들을 확인하다 “무심코, 글을 쓰고 있다.”라는 글제가 눈과 마음을 끌어당겼다. 천천히 정독하다 보니 많은 부분 공감하게 되었다.
‘부사가 없는, 삶은 없다’라는 글제로 브런치 스토리에 연재 중인 ‘소위’ 작가의 글이다. 작가는 무심코 내뱉은 말이나 행동으로 상처받은 경험이 있다 했다. 그럼에도 무심코를 욕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나도 이런 경험이 있어 더욱 마음에 꽂혔다.
예전에 오랜 친구들의 모임이 있던 날이었다. 그날에 내가 입고 간 청바지를 보고 한 친구가 했던 말이 지금도 각인되어 있다. 내 서툰 손바느질로 길이를 직접 줄였는데 내가 보기에도 별로였다. 그래도 마땅한 옷이 없어 그냥 입고 나갔다. 모임 내내 나는 바지 수선한 바짓단이 콤플렉스처럼 신경 쓰였다. 그때였다. 한 친구의 카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얘들아, 저 바지 좀 봐라. 직접 줄였나 보다.” 여기저기서 큭큭 대며 웃어댔다. 그 친구는 무심코 내뱉었을 거고, 아마 지금은 그런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내 기억에만 상처로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그 친구는 우리가 편한 사이여서 그냥 무심하게, 무심코 말한 것임을 지금은 안다.
무심(無心)은 감정이나 생각하는 마음이 없이 그냥인 상태를 말한다.
사람은 언제나 무심한 상태로 살아갈 수는 없는 법이다. 나는 여기에서 무의식의 상태와 무심코는 상관관계가 있지 않나 생각해 보았다.
무심코 너의 정체는 무엇이냐?
상처가 되는 무심코 속에 숨어있는 진실의 파편 하나가 상대를 향해 무의식의 옷을 입고 날아갔을까. 아니면 그야말로 무심한 상태에서 나와버린 화살일까.
무심코 한 말이나 행동이 상대의 마음에 상처가 되었다면 과연 누구의 잘못일까.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다만 상대가 아팠다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도 아픔을 주는 무심코의 말과 행동은 하지 않는 것. 아니 무심코를 줄이는 것이 맞겠다. 나의 마음과 상관없이 오해, 상처, 갈등을 가져온다면 무심코는 무서운 것이다. 우린 완벽하지 않은 피조물이므로 우리의 이성과 지성으로는 정의하기 힘들다.
그렇지만 무심코는 참 좋은 부사이다. 팍팍한 하루 중 무심코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고, 무심코 스치는 바람의 싱그러움과 그 속에 기댄 공기의 고마움도 느낀다. 요즘은 무심코 길을 가다가 고개만 돌려도 벚꽃 잔치 중이다. 무심코는 누구나 쉬어가라고 있는 공원의 벤치이다. 무심코 바라본 가족들의 모습에서 수많은 애환을 목격하기도 한다.
무심코 본 반려 식물은 힘껏 새잎을 내느라 긴 호흡 중이다. 힘내라는 주인장의 응원을 알고 있을 것이다.
무심코가 주는 행복감은 이것뿐일까. 무심코가 없다면 우리네 삶은 얼마나 삭막할까. 양면성이 없는 사람은 없듯이 무심코도 양면성이 있다. 이렇듯 무심코는 갈등을 주기도 하고 평안을 주기도 한다. 다만 상대방에게 상처가 되지 않는 무심코만 있다면 좋으련만.....
아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자. 그냥 무심히 하루를 보내고, 단순하게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언젠가 나의 해결되지 않은 무심코의 갈등이 어떤 모습으로 내 앞에 서게 될지 기대된다. 그날을 위해 오늘도 나에게 주어지는 무심코를 그냥 무심하게 받아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