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오래전 공무원직을 내려놓고 자영업자(도배 장식업)가 되었다. 이 업을 오래 하다 보니 체력적인 부분과 부동산 불경기가 맞물려 지난해부터 매출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아직은 경제적 자유를 누릴 만큼의 여유도 없고, 몇 해 전 환갑을 지난 남편에겐 100세, 120세 시대에 일할 수 있는 일터가 있어야 했다. 지난해부터 많은 생각과 고심 끝에 양봉업에 도전해 보기로 하고 일을 진행하게 되었다. 스스로 공부하는 일에는 자신이 있는 남편은 저녁이면 책으로, 방송으로 양봉 공부에 전념하고 있다.
우선 우리 집 텃밭에 벌통 10개를 사들이기로 했다. 3월 말경에 벌통을 차에 싣고 오면서 행여나 벌들이 스트레스라도 받을까 조심조심 천천히 맘 졸이며 방지턱을 넘었다. 벌통을 내리던 중 환경의 변화를 알아차린 벌들이 사납게 윙윙대더니 남편의 목덜미에 보기 좋게 봉침을 발사했다.
농업경영체 등록을 위해서는 몇 가지 요건을 갖춰야 했다. 그중 젤 먼저 농지를 확보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우선 마을에 있는 농지를 임차하기로 했다. 낮은 산 아래 농막으로 사용 중인 컨테이너도 있고, 전기 시설도 되어있는 영수 씨의 텃밭은 양봉장으로 사용하기에 적합했으며 멋진 뷰는 덤이었다.
우리 부부는 맘에 든 이 땅을 임차하기로 하고 영수 씨 댁을 찾아 사정을 말하니 선뜻 임대해 주겠다고 했다. 정말 고마웠다. 구두 약속을 하고 우리 부부는 그곳을 향해 꿈을 그리고 있었다.
일주일 후 그로부터 이런 말을 듣게 되었다.
“아이고,미안해서 어쩌나!”
“우리 집사람이 그 밭에 정이 들어서…,”
이유는 임대해주는 것을 아내가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계약서를 작성한 것도 아니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되어 그 땅에 잠시 그렸던 꿈을 접어야 했다.
다시 농지를 찾아보기로 하고 동네 뒷산 쪽을 둘러보던 중, 하우스에서 일하시는 동네 아저씨를 만나게 되었다. 이 씨 집성촌으로 이뤄진 우리 마을은 건너 건너 모두 일가를 이루고 있다.
아저씨가 저 위쪽에 있는 땅을 한번 알아보라고 귀띔해 주셨다. 그 땅 주인의 사촌이 우리 마을에 있는 영근 씨라고 일러주셨다. 우리 부부는 평소 알고 지내던 영근 씨 집에 가서 사정을 말하니 사촌 형 땅이며 부산에 살고 계신다고 했다. 영근 씨에게 연락을 부탁하고 임대해줄 의사를 물어보았다.
다음날 임대 해주겠다는 답을 듣게 되었다. 오히려 영수 씨의 농지보다 반듯하기도 하고 우리 집과의 거리도 가까웠으며 큰길 옆이라 양봉하기에 더 좋은 조건이었다.
주말에 서로 대면하여 인사를 나누고 계약서를 작성하였다.
“벌 농사 잘 지어 보세요!”
농지주인의 응원에 우리 부부는 힘이 났다. 생각보다 더 좋은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가파른 길을 올라 양봉장으로 사용될 넓은 땅에서 우리 부부는 다시 꿈을 그렸다. 참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