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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이를 두고 떠난 가을 여행

by 박기숙

옹아, 다녀올게!

옹이는 울 집고양이다. 10월 초순경, 집 텃밭 가장자리에서 울고 있는 새끼고양이를 딸이 발견했다. 옛날 같으면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긴 딸이다. 딸은 겨우 눈을 뜬 고양이를 젖병으로 우유를 데워서 먹이기까지 했다. 수건으로 새끼고양이 몸통을 감싸고 머리만 내밀게 해서 따듯한 우유를 먹이는 모습을 보니 기가 막힌다.

“네가 지금 이럴 때냐? 시집가서 아기를 키워야지!”

“엄마, 연습 중이지” 하며 딸이 너스레를 떤다.


하루가 다르게 옹이는 잘 자라고 있다. 저녁이며 핫팩으로 잠자리를 따뜻하게 해 주고 영양 보충용 간식까지 딸은 유난을 떤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나에겐 정말 꼴불견이다. 키우는 것을 극렬히 반대했지만 결국 젖 떼고 보내기로 합의했다. 살다 보니 계획대로, 약속대로 다 되는 것이 아님을 서서히 실감하고 있다.

한 4주쯤 지나자 아침이면 ‘야옹! 야옹!’ 현관 앞에서 밥 달라고 울어댄다. 내가 먼저 저 녀석 이름을 옹이라 하자고 제안했다. 성은 ‘야’ 이름은 ‘옹’이다. 영혼 없이 대충 지은 이름인데도 정말 좋은 이름이라고 반기는 분위기다. 이러다가 정들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앞섰다. 사실 하루 일을 마치고 집에 왔을 때 어디론가 가버리길 하는 마음도 있었다.

마음과 달리 하루종일 옹이는 우릴 기다린 눈치다. 동그란 눈으로 현관 앞으로 쪼르르 달려와 앞발로 나에게 장난을 걸기라도 하면 어쩔 수 없이 같이 놀아주는 나는 누구인가.

이름도 지어주고 놀아도 주니 서서히 옹이에게 스며들고 있음이 분명하다. 딸은 요즘 말로 까칠하면서 은근히 잘해주는 엄마는 ‘츤데레다’라고 한다.

‘아, 이것이 아닌데….’


올해 마지막 12월을 남기고 깊어가는 늦가을 속으로 소소한 1박 2일 가족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옹이를 두고 떠나니 작은 걱정이 꼬리에 붙었다. 그래도 여행이 주는 자유로움은 숨길 수 없다.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들다는 ‘문경새재’와 ‘안동 하회마을’이다. 문경새재는 옛 선비들이 과거시험을 위해 한양과 영남을 잇는 가장 반듯한 길이었다. 이 길을 열나흘이나 걸어야 한양에 도달했다 한다. 잘 다듬어진 흙길을 사람들은 유유자적 걷고 있다.

그 선비들이 꿈을 품고 간절히 소원하며 걸었을 과거길을 우린 각자 어떤 마음으로 걷고 있는 걸까. 여행이란 역사와 마주한다 했다. 굽어진 길에 오랜 세월 버티고 선 저 나무들은 선비들의 소원을 다 알고 있을까.

황톳길을 맨발로 걷는 이들도 있다. 시냇물 따라 나뭇잎 배가 앞다투어 내달린다. 숲 햇살과 마주한 나뭇잎들은 형형색색 가을을 입고 작은 연못에 가라앉자 쉬고 있다. 우리도 새재길을 두어 시간 걸으며 깊어가는 가을을 만끽했다.

해가 지고 숙소에 누우니 집 아래채에 있는 옹이 자리가 생각났다. 녀석은 잘 있을까. 불 꺼진 현관 앞을 서성거리는 건 아닐까. 괜한 생각에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안동 하회마을을 향했다.

풍산류 씨가 600년간 살아온 오랜 역사 속에 잘 보존된 한국의 대표적인 마을이다. 이름이 하회(河回)라고 한 것은 낙동강이 마을을 감싸 안고 흐르는 데서 유래되었다. 2010년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대부분 평지에 양반이 거주하던 기와집과 일반 백성이 거주하던 초가집으로 구분되어 있다.

마을 기념품 가게를 구경하고 골목길을 돌아 부용대가 있다는 강 북쪽으로 향했다. 마을에서 바라본 부용대는 멋들어지게 깎아지른 기암절벽이다. 부용대와 마을 사이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고 가만히 불어오는 바람결이 아득한 생각에 빠지게 했다.


그 옛날 어느 날 내가 서 있었다. 정말 그림 같은 절벽, 강물, 백사장 바람이 함께한 둑길은 내 삶의 한 장면이 되었다. 만송정 숲길을 걸어 나와 셔틀버스를 탔다. 마을 입구 장터에서 안동찜닭과 고등어구이로 점심을 먹고 하회마을을 뒤로하고 우린 집으로 향했다.

집에 다다를수록 서서히 꼬리에 붙은 옹이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녀석은 밥은 먹었을까. 주인장이 없다고 어디로 가 버렸을까. 아직 어린데. 궁금증을 안고 집 마당에 도착했다. 옹이가 안 보인다.

“야옹아, 옹아?”

잠시 후 아래채 뒤쪽에서 용수철처럼 튀어나온다. 반갑지만 복잡한 내 마음 나도 모르겠다. 분명 젖은 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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