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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멘토 모리(monento mori)

친구를 떠나보낼 때

by 박기숙


눈이 내린다.

겨우내 보기 힘들었던 눈이 바람결에 이리저리 휘날린다.

눈을 핑계로 가게에 나가지 않고 밀린 집안일을 하기로 한다. 냉동실에 오래 보관된 대추를 꺼내 대추차를 만들었다. 온 집안에 대추 향이 따스하게 스며들고 있다.

칙칙폭폭 압력솥 소리, 동네를 오가는 자동차 소리, 재활용 재료로 남편이 만든 풍경소리, 가끔 지나다니는 들고양이를 보고 짖어 대며 밥값 하는 우리 강아지들…. 평화롭다.


이 평화로움은 잠시였다. 오랜 벗 남편의 별세 소식이 전해졌다. 황망하기 그지없다. 남편은 당뇨합병증으로 오랫동안 투병 중이었다. 일곱 명의 친구들이 ‘칠희회’라는 이름으로 봄, 가을로 만남을 지속하고 있다. 우린 사 십년지기다. 오랫동안 같은 시대를 살아오며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고, 그 아이들을 이제는 하나씩 출가시키고 있다. 소소하고 작은 일에도 깔깔대며 우린 웃어댄다. 눈길만 마주쳐도 미소가 번지는 친구들이다.

슬픈 눈발이 차갑게 불규칙하게 내린다.


늘 아픈 남편이지만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던 내 친구. 이 세상 태어나 제일 친한 친구를 먼저 보내는 그녀에게 나도 그냥 너무 슬프다는 마음을 전한다. 딱히 위로의 말이 생각나지 않음은 그 슬픔 속에 함께여서일까.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봄날에 남편을 만났다. 내 나이 스무 살 중반이었다. 살다 보니 새신랑이던 그이는 아이 아빠가 되고, 아이 아빠는 친구가 되어간다. 예전에 남편이 길에서 실신한 일이 있었다. 대학병원에 입원해 여러 가지 검사를 하였으나 원인을 찾지 못했다.


남편을 입원시키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남편이 머물던 공간에 있는 모든 물건이 그대로 정지되어 버렸다. 그것들이 아무런 소용이 없어졌고, 주인을 잃은 물건들은 빛바랜 사진첩 속 한 장면 같았다. 슬픔의 나락으로 떨어진 나는 주저앉고 말았다.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남편을 살려 달라고. 그때는 절실했다.

문득 그때를 생각하니 지금 나의 벗의 슬픔을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모멘토 모리(monento mori)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라는 라틴어다. 소중한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살라는 것이리라. 누구나 언젠가는 죽기에 잘 살아야 한다. 잘 산다는 것과 부자로 산다는 것의 의미는 너무나 다르다. 사람들은 경제적인 부자로 사는 것을 잘 산다고들 말한다. 이것은 그냥 부자일 뿐이다.


그렇다면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사소한 일도 함께하는 것, 맘껏 수다를 떨고, 함께 여행을 떠나는 일, 그들과 후회 없이 사랑하며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리라.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나와 함께 할 이들을 떠올려본다. 나와 가장 가까운 배우자, 부모, 형제, 자녀, 친구들이다. 그들과 마지막까지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같이 한다는 것은 축복이다.


먼저 남편을 떠나보낸 친구가 부디 마음을 잘 추스르길 바랄 뿐이다.

‘누구보다 정말 잘 살았어.’ 그동안 수고한 친구에게 진심을 담아 응원을 보내본다.


우리도 언젠가 친구 같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 올 것이다. 후회 없이 사랑했노라 말할 수 있는 그런 일상을 감사함으로 보내야 할 것이다.


조용히 눈이 내린다. 이토록 슬픈 눈이 자꾸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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