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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기숙 Aug 03. 2023

어머니, 시장가요!

          

“아, 저 집 같은데…,”

부산 기장읍에서 해운대 방향 대로로 이동하면 고급스러운 한우식당이 보인다. 참 오래돼 보이는 식당이다. 우리 가족은 기장읍 조그만 아파트에서 혼자 지내시던 시어머니를 모시고 그곳을 찾았다. 어머니 생신이라 좋은 식사를 대접하고 싶었다. 아마 어머니도 처음 그 식당에 와보는 듯했다.

식당 직원이 무릎을 꿇고 직접 소고기를 구워주었다. 맛도 맛이지만 엄청 대접받는 느낌이었다. 평생을 혼자 살면서 근검절약이 곧 생활이요, 절대 낭비는 있을 수 없는 어머니셨다. 그런 분을 모시고 식당에 가는 것은 우리에게 숙제와도 같았다. 그때도 잠깐 시장에 가자며 모시고 나와 겨우 식당으로 모셨다.

어머니는 마트 포인트까지 기록하셨고 단돈 십 원도 빼먹지 않고 적어놓을 만큼 알뜰하셨다. 왜 이런 곳에 데려왔냐고 투덜거리면서도 식사를 맛나게 하셨다. 어머니를 집으로 모셔드리고 우리도 집으로 돌아왔다. 예상대로 후폭풍이 몰아쳤다.

“잘 도착했냐? 그래, 니들은 돈을 겁도 없이 쓰는구나. 다음부터는 오지 마라!” 호통을 치셨다.   

  

한 번은 어머니께 일식을 대접하고 싶었다. 마침 일식집이 시장 근처에 있었다. 오래된 집이라 부담이 없었다.

“어머니, 배고픈데 저기서 간단하게 밥 먹고 가요.”

어머니는 못마땅하신 표정으로 따라 들어오셨다. 물론 코스 요리로 주문을 했다. 중간쯤에 회가 나왔다. 회 밑에 무채처럼 플레이팅 된 것을 어머니가 아깝다며 드시는 것이었다.

“어머니, 그건 드시지 마세요!”

자꾸만 나오는 요리에 어머니는 조금 당황하신 듯했다.

“머가 자꾸 나오노? 이거 비쌀 낀데…,”

“얼마 안 해요, 이것도 드셔보세요.”

어머니는 한 점도 남김없이 매운탕에 밥까지 다 드셨다. 그렇게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예상은 항상 빗나가지 않았다.

“니들은 참 간이 크다! 그리 말을 해도 소용이 없네. 이제는 절대로 우리 집에 올 생각하지 마라!”


궁리 끝에 한 번은 대형마트에서 초밥과 각종 샐러드를 종류별로 구입해서 들고 갔다. 또 식당에 모시고 갔다가는 혼날까 봐 장을 봐서 집에서 먹은 것이다.     

어머니는 지난해 아흔을 넘기셨다. 요양원에서 보내신 세월이 벌써 8년이 되어간다. 일반식은 못 드시고 죽으로 세끼를 드신다. 면회를 가도 10분 이상 대화하는 걸 힘들어하신다. 

갓 시집갔을 때 나는 어머니가 무서웠다. 옆에서 말도 제대로 못 하고 겨우 대답만 했던 것 같다. 평생 아끼고 모으는 것을 즐거움으로 아셨던 어머니지만 명절이면 기장 시장에 가서 자식들이 좋아하는 양념게장과 명란젓을 사다 놓으셨다.


어머니는 또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셨다. 아들며느리, 손자, 손녀가 가면 이야기보따리를 펼쳤다. 책을 많이 읽으신 어머니는 한국사는 물론 중국전쟁 이야기, 세계사까지 줄줄 풀어놓으셨다.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에 졸음이 쏟아졌다. 그래도 들어야 했던 그 시간은 살짝 괴로움이었다. 아파트 청소를 하다가 버리는 역사책, 위인전, 세계사 등 책을 들고 오시기도 했다. 경로당에 가는 것보다 혼자서 독서하는 걸 더 좋아하셨다. 119에 실려 부산 백병원으로 가시기 전까지. 

    

어머니와 함께 했던 그 시간들이 그립다. 

‘어머니, 시장가요!’ 

후폭풍 같던 호통을 각오하면서 시장에 모시고 가서 먹었던 음식들도 생각난다. 이제는 함께 갈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비록 지금 요양원에 계시지만 그곳에서 마음의 평안이 함께 하시길 늘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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