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기숙 Aug 03. 2023

괜찮아


출근차에 올라 시동을 켰다.

마당에서 아래채 창문을 보니 결로 현상으로 이상하리만큼 상당히 많은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방은 가끔 오시는 손님들을 위한 방으로 자주 사용하지 않는다. 그대로 차에 내려서 아래채 문을 여니 습하고 후덥지근한 장마 날씨에 시원하고 쾌적한 공기가 나의 피부에 와닿았다. ‘왜 이리 시원하지.’ ‘이상하네’ 혼잣말을 했다. 방 안으로 들어서야 이유를 알고 깜짝 놀랐다. 며칠 전에 습기 먹은 방을 위해 에어컨을 작동시켜 놓은 것을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도대체 며칠 밤낮 창문들을 땀 흘리게 했단 말인가.
 폭탄 맞을 전기요금도 걱정이지만 이 사실을 하루 이틀도 아니고 며칠을 잊고 있었다는 것이 한심스러웠다. 대충 창문의 물을 닦고 불편한 맘으로 차를 타고 가게로 향했다. 출근하는 중 무언가 허전한 맘이 들어 차를 가장자리에 세우고 가방을 뒤졌다.  소중한 핸드폰을 집에 두고 온 것이다. 이미 많이 온 상태여서도 차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가서 핸드폰을 가지고 다시 오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이건 분명 ‘머피의 법칙’이다. 일이 잘 풀리지 않고 꼬이기만 하는. 근데 오기가 작동하면서 그래 한번 꼬여 봐라는 배짱이 생겼다. 가게 앞 주차장에 다다르니 주차자리는 한 곳도 비어있지 않다.

이럴 땐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빈자리가 생길 때까지 그대로 차에 있는 것과 다른 주차자리를 찾아 상가를 빙빙 도는 것이다. 일단 차에 앉아 20분간 기다려 보기로 했다. 다행히 자리가 생겨 주차하고 가게에 들어서서 오늘 하루는 배짱으로 지내보기로 이상한 결심을 한다.   

  

이쯤에서 “배짱으로 삽시다”라는 밀리언셀러 작가이신 이시형 박사님의 책이 생각났다. 지금도 책장 어딘가에 누렇게 색 바랜 모습으로 있을 책이다. 젊은 날의 나는 타인의 시선보다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히 살아도 괜찮다는 위로를 받았다. 일이 꼬여도 된다. 예상치 못한 일이 분명 생긴다. 그래도 괜찮다. 방법의 차이는 있겠지만 풀면 되니까. 산다는 것이 그리 특별한 것도 없고 그렇다고 만만한 것도 아니므로.     


머피의 법칙 반대어는 무엇일까. 궁금하여 찾아보니 ‘샐리의 법칙’이다. 좋은 일이 계속 생기며, 나쁜 일이 생기더라도 전화위복이 되는 경우를 말한다. 미국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서 계속 좋지 않은 두 사람이 결국엔 해피앤딩으로 이끌어 가는 여주인공 샐리의 모습에서 빌려온 ‘샐리의 법칙’이다. 긍정적인 자세가 문제해결의 키워드가 된다.


머피, 샐리의 법칙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떤 갈등, 혹은 사건이 생길 때 배짱을 가져본다. 자신을 믿고 그럴 수 있다고, 괜찮다고, 그래도 감사하다고 여길 수 있는 흔들리지 않은 마음의 무게에 있다.      

비장하게 배짱으로 하루를 보내려 했으나 특별한 일 없이 평범한 하루를 보냈다.


그래도 감사하고 괜찮은 하루였다.                                  2023. 7. 21.          

작가의 이전글 어머니, 시장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