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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기숙 Aug 04. 2023

민박집이 된 외갓집

엄마 속이기 작전

    


 세 자매가 거제도 1박 2일 짧은 여행을 계획했다. 엄마를 모시고 가는 여행이었다. 민박집을 내 고향 거제도 지세포로 정했다.

이곳은 내가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이다. 지세포에 외갓집이 있었다. 외갓집 대문을 열면 망망한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요즘 말로 뷰가 끝내주는 곳이었다. 여름이면 외갓집 앞바다가 우리 놀이터였다. 조개 캐기와 바다 수영은 기본이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바닷물이 차오르면 서둘러 외갓집으로 향했다. 집 마당에는 커다란 포구 나무가 한그루 서 있다. 대충 수돗물에 몸을 씻고 널찍한 평상에 그대로 누워 낮잠에 들기도 했다. 살랑살랑 나무 아래로 불던 바람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사르르 눈이 감기고, 잠결에 미소를 짓게 하는 행복한 바람이었다. 노곤한 몸은 금세 잠이 들고 만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할머니가 옥수수랑 조개를 삶아 함지박에 그득 담아 내주셨다.

     


몇 달 전 친구랑 거제도로 하루 여행을 다녀왔다.

세월 따라 관광도시로 변해버린 내 고향을 둘러보다 외갓집을 찾아가 보았다. 어찌 된 일인지 그곳에 민박집 간판이 붙어있었다. 외조부모님 돌아가신 지 오래되었고 외삼촌이 그 집을 팔고 아파트로 이사했다는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외갓집이 없어졌다는 서운함에 기분이 씁쓸했다. 세월이 참 많이 흘렀음을 이제는 받아들여야 했다. 언제 한번 날을 잡아 민박집이 된 외갓집에서 묵어봐야지 마음먹었다. 지나가는 소리로 엄마에게도 소식을 알렸다.


”엄마, 외갓집이 민박집으로 바뀌었대. 우리 한번 가볼래요?”

슨 소리고! 나는 절대 안 간다!

엄마는 완고하셨다.(외삼촌과 갈등이 있었다) 엄마에겐 알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접근하기로 했다. 민박집 연락처를 찾아서 그 집을 예약했다. 그날부터 우리 세 자매는 시치미 떼기 작전에 돌입했다. 엄마는 딸들과 1박 2일 여행을 앞두고 김치도 준비하고 드실 약도 챙기면서 기대하는 눈치였다.      

드디어 거제도로 향했다. 지세포와 가까운 장승포에는 큰 이모님이 계신다. 30년 동안 뇌졸중으로 와상상태로 지내시는 큰 이모를 뵙고는 다시 못 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는지 많이 우셨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지세포로 향했다.

민박집 체크인 시간이 오후 2시는 넘어야 했다. 멋진 바다가 펼쳐진 곳에서 이른 점심으로 생선구이 정식을 맛나게 먹고 인근 카페에 갔다. 그 카페에서 보이는 지세포 바다는 마음을 설레게 했다. 나의 유년시절의 그 바다다. 체크인 시간이 다가오자 세 자매는 눈치작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영아, 어디다 숙소를 잡았니?”

“아, 위치를 보니까 외갓집 근처던데, 일단 한번 가봅시다.”

이윽고 민박집 앞에 차를 세웠다.

“여기 같은데?”

“여기라고?”

우린 모른척하며 짐을 하나씩 옮겼다. 엄마는 자연스럽게 따라 들어오다가 눈이 휘둥그레지셨다.

“우찌 이런 우연이 다 있니?”

엄마는 현관문을 열고 거실을 지나 할머니가 지내시던 안방에 들어가셨다. 속깊이 자리한 설움을 토해내시며 오래 참은 눈물을 쏟았다. 외삼촌 외숙모님과의 갈등으로 외할머니가 집 안으로 들어오시지도 못하고 밖에서 주무시는 일이 많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외동아들인 외삼촌에게 집과 땅을 다 주었는데도 이해할 수 없는 과거사였다. 엄마는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에 마음 아파하셨다. 우리들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이곳에 와보고 싶은 마음만 앞선 것 같아 엄마께 죄송한 마음도 들었다.  

   


짐을 정리하고 조개잡이용 호미, 장화, 아쿠아슈즈 등을 챙겨서 바다로 갔다. 얼마 만에 해보는 조개잡이인지 모른다. 동생은 아예 바다 수영에 푹 빠졌고 엄마도 조개잡이에 자연스럽게 동참하셨다. 해초를 머리 위에 장식도 하고 우스꽝스러운 사진도 남기며 동심으로 돌아갔다. 만조가 되어 쫓기듯 바다에서 나왔다.

준비한 저녁거리로 밥을 차리고 한 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었다. 새로 지은 외갓집은 내 어린 시절 그 모습은 아니지만 제 몫을 다한 구멍 숭숭 뚫린 시멘트 장독대는 그대로였다. 식사 후 엄마는 인근 작은 이모집에서 주무신다고 가셨다. 조부모님 생각에 쉬이 잠을 이룰 수 없는 듯했다.

    

“아직 자나?”

이튿날 아침, 엄마 목소리가 힘이 있다.

“아, 엄마 일찍 오셨네. 식사는요?”

”난 너희 이모랑 먹었다. 동네가 너무 변해서 도통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더라.”

벌써 동네 한 바퀴하고 오신 것이다. 아침을 차려 먹고 짐을 정리하고 민박집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 엄마는 행복해 보였다.

민박집이 된 외갓집에서 우리들은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고 각자 집으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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