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지만, 백수가 꿈입니다
시윤은 구직활동을 멈춘 지 5년째다.
하지만 멈춘 적이 없다. 무슨 말이냐 하면, 시윤의 머릿속에는 언제나 '이력서 넣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의 톱니바퀴가 끊임없이 돌아가고 있다.
이력서를 넣지 않았을 뿐, 구직활동은 5년째 하고 있는 것이다.
시윤의 아침 시간은 매일 달라진다. 시윤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순간, 그 순간이 시윤의 아침이다. 그게 오후 1시든, 3시든. 시윤에겐 아침이다.
시윤은 5년 동안 매일 같이 구인구직 어플에 접속해 새로운 일자리를 확인한다. 하지만 시윤의 맘에 쏙 드는 곳이 5년 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 시윤 자신도 무슨 업무를 하고 싶은지 잘 모르는 게 크다.
시윤은 엄마가 지난밤 해놓은 반찬을 꺼내고, 냉동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나름 3첩 반상으로 잘 차려 먹으며, SNS를 본다. 대학 졸업 후 구직활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야 도전하는 친구를 보며 부럽고, 또 좌절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친구들 일상은 시윤에겐 이제 그냥 밥 먹으며 보는 '밥친구'다.
인생 속도가 좀 더 빠른 친구들은 결혼은 물론이고 그로 인해 겪을 수 있는 모든 경험(아이라든가, 이혼이라든가)을 벌써 끝냈다. 물론 두 번 이상 같은 경험을 한 친구도 있다.
이 친구들과는 이젠 '지인'이란 말이 더 어울릴 정도로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지만, 시윤은 아무렴 인연만 닿아 있으면 외톨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윤의 친구들은 꽤나 다양한 직종에서 일하고 있다. 시윤이 '나 같으면 이런 데서 일 안 하겠다.'라고 생각하는 곳에서 그 친구는 "팀장"자리까지 올랐다.
그리고 가끔 퇴사했다는 친구들의 게시글을 보면 '그 자리에 내가 가고 싶다.'라는 구직의사가 생기긴 하지만 그때뿐이다.
그 이상으로 생각하기 귀찮다.
인간은 꼭 일해야 하는 걸까?
직업을 갖고, 돈을 벌어야 인간 대접을 받는 걸까?
그냥 '나'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모자란 걸까?
시윤의 머릿속 톱니바퀴는 오늘도 돌아간다. 시윤은 쉬고 있지만, 쉬고 싶다. 지난 5년 동안 포기한 적 없지만 포기한 것처럼 보였던 지난날의 자신에 대해 항변하고 싶다.
매일 같이 돌아가는 시윤의 톱니바퀴는 멈추지 않는다. 빨라지거나 느려지지도 않은 채로 5년째 돌고 있다.
오늘도 시윤의 톱니바퀴는 야근 중이다. 새벽 3시, 좀처럼 잠들지 못하는 시윤은 이 톱니바퀴를 멈추고 싶다.
시윤의 톱니바퀴는 이내 다른 톱니바퀴를 돌리기 시작했다. 시윤은 상상한다. 대기업 사원증을 메고 출입구 게이트에 사원증을 찍는 자신의 모습을. 5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했던 상상이다.
언젠간 이루어지겠지, 시윤의 나이가 31살이지만 결코 늦지 않았겠지. 대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노력한 거라곤 톱니바퀴 돌리기 밖에 없지만 시윤은 그것마저 끊임없는 노력임을 누군가는 알아주길 바란다.
5년 동안 손 놓고 있던 게 아니라고.
무기력함에서 이제 그만 쉬고 싶다고.
아침마다 무기력이라는 업무에서 해방되고 싶다고.
시윤은 사실,
스스로 깊게 가라앉은 바닷속에서 헤엄쳐서 올라오고 싶었다. 하지만 팔과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어느덧 시윤의 팔과 다리엔 무기력이라는 추가 묶여있다.
스스로 헤엄치기 어렵기도 할뿐더러 도와줄 사람도 없다. 추를 풀어본 적이 있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같이 가라앉았던 옆 사람은 몇 년 동안 온몸을 비틀더니 결국 헤엄쳐 올라갔다. 그것이 시윤이 유일하게 아는 추를 푸는 방법이다.
시윤의 모든 일상들은 추를 벗어던지는 것부터 시작이지만 시윤의 추는 너무나 무겁다. 제 힘으로 풀지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아니, 풀면 얼마든지 풀 수 있겠지만.
31살, 시윤은 이젠 팔다리가 묶여 온종일 어두컴컴한 깊은 바닷속에서 홀로 톱니바퀴 굴리는 삶을 택했다.
결국 이것이 시윤이 택한 첫 일상, '쉼'이다.
시윤은 무언가의 보상으로 주어지는 쉼을 거부한 것이다. 스스로 택한 '쉼'에 시윤은 만족한다. 아니, 만족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지난 5년간 돌아간 톱니바퀴의 시간이 너무나 가엾고, 보잘것없는 쓰레기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리서 시윤은 톱니바퀴를 저만의 속도로 돌리고 있다.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젠 어떤 이유든, 어쨌든 그래야만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