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과 삶, 그 여정

쉼과 삶, 그 여정 (2)

by 수수


월요일이다.
보이지 않는 투명한 안개가 자욱하게 낀,
시야가 아닌 마음이 흐리다 못해 회색에 가까운 요일.

회사 점심시간이 되었다. 오늘은 팀 전원이 같이 점심을 먹는 날이다. 회사 정책이었다. 그다지 친목이 중요한 팀이 아닌지라 묘한 정적이 흘렀다. 그때, 같이 점심을 먹던 한 팀원이 아이에게 질문을 던진다.

"ㅇㅇ님은 취미가 뭐예요?"

아이는 잠깐 당황했다. 갑자기 질문을 받아서가 아니라 '그러게, 내 취미가 뭐더라. ' 잠시 생각에 잠겨서였다. 아이는 이내 'OTT 보거나 게임해요. ' 무심하게 대답하고는 밥 한 숟갈을 욱여넣는다. 질문한 팀원 또한 그냥 그렇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밥을 먹는다.

'취미'라는 것은 뭘까.
사전적 의미로는 세 가지의 뜻이 있다.
첫 번째,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
두 번째, 아름다운 대상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힘.
세 번째, 감흥을 느끼어 마음이 당기는 멋.

여기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취미'는 첫 번째 의미일 것이다.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이라.
잠들기 전, 스마트폰으로 SNS, 동영상 플랫폼 보는 정도만 떠올랐다. 가끔 게임도 하긴 했는데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즐기면서 플레이했던 날들이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적었다.

아이는 정말로 그 외에는 무엇을 하며 살아왔는지, 어떤 시간을 보낼 때 즐거웠는지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멈칫했던 아이는 괜스레 퇴근길에 "취미"를 검색해 본다. 남들은 무엇을 즐기며 시간을 보낼까 궁금하기도 했다. 검색 결과는 뭐, 예상은 했지만 광고 사이트 범벅에 아이의 취향이 아닌 정보들만 나열되어 있었다. 구미가 당기는 건 하나도 없었다.

집에 도착한 아이는 그대로 소파에 널브러졌다.
가만히 천장을 바라본다. 난 어렸을 때부터 뭘 좋아했을까. 뭘 할 때 가장 행복했었지? 추억을 더듬어본다.

불현듯,
교과서 모퉁이에 낙서하며 즐거워하던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는 무척 오랜만에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아이는 그림을 그릴 때 행복했다. 그림을 그리고 나면 옆 짝꿍이 잘 그렸다는 눈빛을 보내줬을 때의 뿌듯함이 선명하게 기억났다.
아이는 인생에서의 큰 숙제를 해결한듯한 개운함까지 느꼈다.

이렇게 짧은 시간 내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기억해 내다니 조금은 허탈하고 어이도 없었다. 이 기억을 꺼내지 못할 만큼 바쁘게 살진 않았을 텐데, 무엇을 위해 살아온 것인지 씁쓸함도 함께 밀려왔다.

그 연장선으로 꿈과 장래희망의 구분도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아이의 정확한 꿈이자 장래희망은 '그림 그리는 검사'였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검사는 들어보지 못했고, 특히나 아이 주변의 어른들은 그림과 검사를 동일선상에 놓고 바라보지 못했기 때문에 아이는 검사를 하려면 그림을 그리면 안 되는구나. 생각하며 자랐다.

어릴 적 환경이 조금은 원망스러웠다. 누군가 한 명이라도 뭐 해 먹고살래?라는 의미로 "꿈이 뭐니?"라는 질문을 하지 않았더라면. 대신에 "ㅇㅇ이는 뭐 하고 노는 거 좋아해?"라고 물어 봐줬더라면. 하고.

환경 탓을 하기엔 아이는 너무 커버렸다.
자신의 세상을 넓히기 위해 자신을 충분히 탐구할 수 있던 시간이 많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를 감추고 살아야 했다. 나 자신을 고민하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매우 낯선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이는 대한민국에서 살기 위해 나 자신을 탐구하는 행위 대신 회사가 원하는 인재상을 탐구했고, 덕분에 먹고살고 있다. 그냥 말 그대로 먹고살고만 있다.


요즘 아이는 저녁 늦게까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며 주말을 지낸다.
평일에도 '그냥 재밌어서' 붓과 팔레트를 잡는 날도 많았다. 어렸을 때 교과서 한편에 그림 그렸을 때보다 더 재밌었다. 이젠 나름 그럴싸한 장비들도 갖췄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후,
아이는 일요일 저녁부터 미리 출근하는 기분을 느끼지 않았다.


벌써 한 달에 한 번씩 캔버스화 한 점을 완성하는 아마추어 화가였다. 비슷한 취미의 커뮤니티도 가입했다. 같은 즐거움을 공유하지만,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그림을 보며 아이는 인생의 밀도를 쌓아갔다.

아이는 쌓여간 인생의 밀도와 함께 촘촘히, 섬세하게 그린 나만의 그림들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단 또 다른 꿈이 생겼다. 교과서에 그린 그림을 본 짝꿍의 눈빛을 또 한 번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아이는 조만간 전시회를 열 것이다.
전시회 장소는 집, 큐레이터는 아이 자신이다.
결국엔 그냥 지인들과 저녁 먹는 자리가 되겠지만, 그럼 어떠한가. 나의 꿈이 가득한 곳에서 지인들과 함께하는 자리가 얼마나 뜻깊을지 벌써 기대가 된다.

언제까지나 지속되는 행복은 아닐 것이다.
그림이 질리면? 아이는 이제 헤매지 않고 단숨에 또 다른 꿈을 찾을 것이다. 한번 헤맨 숲은 이제 가 본 숲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아이는 적어도 더 이상 주말을 공허로 날려 보내진 않을 것이다.

아이는 지금 회사에서 2~3년 정도의 적당한 경력을 채우고 이직을 할 계획은 변함없지만, 적어도 그 이후의 시간에 무엇을 할지도 어렴풋하게나마 그림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아이는 제법 '어른' 같아졌다.
누군가 또 한 번 10년 뒤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 것 같냐고 물어본다면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고, 그에 따른 미래 계획까지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대한민국 기업 면접 자리만큼은 제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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