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과 삶, 그 여정 (1)
"저는 검사가 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피해자들을 위해 범죄자들을 다 혼내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아파트 놀이터 정자에 모여 앉아 있던 아주머니들이 '넌 꿈이 뭐니?'라고 물었을 때, 아이는 장래희망을 이야기했다. 이유도 그럴싸했다. 꿈을 질문한 아주머니들도 장래희망을 듣고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먹고사는 건 지장이 없겠다며, 벌써 철이 들었다고 칭찬을 했다.
그렇게 아이는 은연중에 장래희망과 꿈은 같은 거구나. 하고 살아왔더랬다.
검사가 되고 싶던 아이의 유년시절이 흐르고 흘렀다.
안타깝게도 아이는 검사가 되지 못했다.
이젠 본인이 검사가 장래희망이었던 것도 잊을 만큼 훌쩍 커버린 아이에게 빳빳한 검은 정장을 입은 면접관이 질문을 던진다.
"ㅇㅇㅇ씨는 10년 뒤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 것 같나요?"
유년시절 꿈 혹은 장래희망을 물어보는 질문과 의미는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젠, 아니 적어도 이 자리에서만큼은 검사가 되고 싶다고 말하지 못한다.
"저는 현재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러나 세상엔 꼭 필요한 프로젝트를 기획하여 회사 이익창출에 이바지하고, 또한 그 프로젝트로 인해 회사가 더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하는데에 중심인물이 되어 있을 것 같습니다."
피해자들을 위해 범죄자를 혼내주고 싶다던 아이는 이젠 회사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인생의 10년 정도는 회사를 위해 흘려보낸다는 답변을 똑 부러지게도 답했다.
하지만 아이 스스로도 이 대답은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물론 면접관도 알고 있다.
애초에 아이는 이 회사를 위해 인생의 10년을 바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2~3년 정도의 경력을 채우고 적당한 시기에 이직할 계획이다. 이직 후 남은 7~8년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사실 질문한 면접관 또한 처지가 다르지 않다. 10년 뒤엔 자신이 어떤 위치에, 어떤 사람으로 있을지 대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질문한 사람도, 대답한 사람도
무엇이 정답인지 모를 질문과 답변이다.
별다른 꼬리 질문은 없었다.
만약, 아이가 검사가 되었다면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10년을 바칠 수 있단 답변이 진심이었을까.
검사가 되면 장래희망, 그러니까 꿈을 위해 10년이 아닌 한평생을 검찰청에서 보내도 행복했을까.
내 답은 '아니오.'이다.
이 아이는 유년시절부터 잘못된 대답을 해왔다.
장래희망이 검사라는 아이는 '피해자들을 위해' 범죄자들을 혼내고 싶었고,
이런 아이는 커서도 '회사의 이익창출에 이바지' 하는 삶 밖에 모르기 때문이다.
이 아이에겐 지금껏 '나를 위한' 순간이 한 번도 없었다. 정확하게는 나를 위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기회가 없었다.
아이는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거짓말로 범벅한 면접에서 통과했다. 회사에 다닌 지 얼마나 됐을까. 아이는 일요일 저녁이 되면 알 수 없는 공허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 내일 출근하네. 뭐 했다고 주말이 벌써 끝났지?'라는 생각으로 기분이 좋지 않다.
주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거의 반나절 넘게 미리 출근해 있는 기분인 것이다.
반가운 기분은 결코 아니었다.
이런 주말은 회사 다니는 내내 반복되었고, 심한 날은 금요일 퇴근하는 순간부터 월요일에 출근하기가 싫어지기까지 했다.
앞으로 이 아이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