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SNS를 한다는 것은 (3)
사라는 오늘도 sarah.j의 계정에 사진을 업로드했다. 헬스장 전신 거울 앞에서 높게 묶은 포니테일 머리에 유명 운동복을 입고 찍은 사진과 함께 '오. 운. 완'이란 문구도 잊지 않았다. 사실 사진은 운동 시작 전에 찍는다. 사진부터 찍어야 꾸민 모습이 흐트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은 후 운동을 시작하고, 운동 시간은 30분도 채우지 않는다. 왜냐면 사라는 다이어트 약을 먹고 있기 때문이다. 운동을 하지 않아도 몸무게가 하루하루 줄어갔다. 사라에겐 헬스장 또한 sarah.j를 꾸미기 위한 곳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sarah.j의 피드 속 사라가 점점 말라갈 때마다 팔로워들은 점점 더 예뻐진다, 운동복마저 잘 어울린다 등 sarah.j를 찬양했다. 바디프로필 콘셉트 브이로그가 알고리즘을 타고 많은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팔로워도 12만 명에서 15만 명으로 늘었다.
분명 몇 주 전만 해도 sarah.j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던 사라였지만, 다이어트 이후 더 예뻐졌다는 댓글에 중독되어 장사라의 건강은 안중에도 없었다.
바디프로필 촬영 당일, 사라는 아침 공복 몸무게를 재봤다. 49kg였다. 사라의 키가 167cm니 건강에 무리가 갈 만큼 마른 체중이었다.
스튜디오에 도착해서 바디프로필 촬영을 하는 내내 사라는 기운이 없었다. 챙겨 온 사탕을 먹으면 일시적으로 힘은 났지만 컨디션이 영 시원찮았다. 그 모습을 본 스튜디오 측에서는 표정만 잘 유지하면 복근과 같은 '패션근육'도 보정으로 만들어 준다고 했다. 그 한마디에 사라는 죽을힘을 다해 콘셉트에 맞는 표정을 유지했다. 촬영이 끝난 뒤엔 추가비용으로 패션근육을 구매했다.
2주 뒤, 바디프로필 완성본이 메일로 도착했고 사라 눈에는 깡마른 몸에 돈으로 그린 근육들이 아름답고 만족스러웠다. 완성본 20장 중 제일 예쁜 사진 4장을 골라 SNS에 '기나긴 대장정 마무리'라는 글귀와 함께 업로드했다. 업로드 이후 sarah.j의 가치는 더 올라갔다. sarah.j가 입은 운동복, 다녔던 헬스장, 바디프로필을 찍은 스튜디오 등 sarah.j가 지나간 길들을 똑같이 걸으려는 팔로워들의 문의가 많았다.
사라는 댓글 수가 늘어날 때마다 sarah.j에게서 멀어지고 싶었던 얼마 전의 자신을 잊고는 완벽히 sarah.j가 되어가고 있었다.
월요일이다. 팀원이 모두 모여 점심식사하는 날. 회사에서는 월요일을 '팀즈데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사라는 입사 직후부터 별 걸 다 이름을 붙인다고 생각했지만 티는 안 냈다.
"사라 님, 이제 식단 안 하세요?"
팀 막내가 물었다. 사라 식판에 수북이 쌓인 밑반찬들을 보고 궁금했나 보다.
"네, 바디프로필 찍고 사진도 다 받았거든요. 끝났어요. 이제 막 먹어도 돼요."
사라는 웃으면서 밥을 한 숟갈 푹 퍼서 먹었다. 구내식당 밥이 이렇게 맛있었나. 미소가 얼굴에 번졌다. 샐러드도, 다이어트 약도 더 이상 먹지 않는다. 또, 인증샷 찍으러 헬스장을 가지 않아도 된다.
입사 후 가장 행복한 팀즈데이를 보낸 사라는 평소처럼 퇴근길에 sarah.j의 SNS를 확인했다. 바디프로필 사진에 평소보다 과하게 많은 댓글이 달려있었다.
복근 포토샵인 거 너무 티 남
저 스튜디오 피해자 많은데 장사라만 모른 듯
약 먹고 살 뺐나? 딱 그런 몸매인데
맨날 헬스장 사진은 올리면서 근육에 ㄱ자도 안 보일 때부터 이상했음
sarah.j도 결국 이렇게 가는구나 털털해서 좋아하던 인플루언서였는데
sarah.j의 거짓말이 들켜버렸다. 너무 당황한 사라는 걷다가 몸이 굳어버렸다. 어디라도 숨고 싶었다. 게시글을 삭제하고 회피할까 생각했지만 이미 해당 게시글뿐만 아니라 지난 몇 주간 올린 게시글 전체에 해명하라는 댓글이 달려있었다.
사라는 대학교 입학 했을 때부터, 그러니까 성인이 되고나서부터는 장사라가 아닌 sarah.j로 살아온 시간이 훨씬 더 길기 때문에 sarah.j가 받은 충격에 장사라 자신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몰랐다. 일단 이 상황에서 도망치는 게 우선이다. 사라는 얼른 sarah.j 계정을 휴면 상태로 만들었다. 계정이 휴면 상태면 아무도 sarah.j 계정을 찾을 수 없고, 기존 팔로워들에게도 노출이 되지 않는다. 이젠 장사라 뒤로 sarah.j가 숨어 버린 것이다.
하루아침에 15만 명의 팔로워가 없어진 장사라 인생에는 놀랍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강제로 정체성을 찾았다고 해야 할까. 충격과 혼란스러움이 완전히 가시진 않았지만 어떻게든 장사라는 버텨내고 있었다.
흐르지 않을 것 같던 시간은 흐르고 흘러 팀즈데이가 두 번이나 지나갔다. 오늘은 그날 이후 세 번째 팀즈데이다.
"사라 님, 식사 다 하셨으면 저랑 잠깐 얘기하실 수 있으세요? "
팀 막내가 물었다. 사라는 괜스레 sarah.j 계정을 휴면한 이유를 물을까 무서웠다. 그렇지만 팀 막내는 그럴 사람은 아닐 것 같았다. 그럼 뭘까.
"아, 네. 커피는 제가 살게요. 저희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
사라와 팀 막내는 먼저 식사 자리를 벗어났다. 사내카페로 이동한 둘은 커피 한잔씩 들고 가장 구석진 곳에 앉았다.
"근데 무슨 일 있어요? 왜 보자고 했어요? "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단 생각에 사라가 먼저 질문했다. 진짜로 sarah.j 계정 휴면 이유가 궁금한 걸 수도 있으니까.
"혹시 봉사 한 번만 더 와주실 수 있을까요?"
하, 다행이다. sarah.j 얘기가 아니구나. 봉사라면 이제 시간도 많으니 언제든지 갈 수 있다고 답했다.
"사라 님이 찍은 사진 느낌이랑 스토리 패턴들을 센터에서 템플릿처럼 이용했는데 아이들 입양률이 배로 올랐어요. 정말 감사해요. 그런데 윙크..."
"윙크가 왜요? 또 신고당했어요? "
윙크 이야기에 사라는 흥분했다. 그런 사라의 모습에 막내는 좀 놀랐지만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니요, 신고당한 건 아니고 일주일 전에 입양을 갔다가 파양 당했어요. 윙크 외모 때문에 도저히 정이 안 붙는다나.. 그래서 그런데 윙크 입양 공고 업로드 하나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
윙크가 그 사이 입양을 갔다가 파양을 당했다는 말에 윙크 걱정부터 됐다. 얼마나 충격이었을까. 윙크는 사라처럼 자신을 치장할 거짓말을 하지도 못하는 데다가, 할 수 있다고 해도 안 했을 아이다.
윙크란 이름이 적힌 목걸이를 그대로 착용한 채 버려졌을 때, 두 눈으로 바라보던 세상이 반쪽 짜리 세상으로 바뀌었을 때 생긴 상처들이 너무나 커서 온몸으로 울고 있던 윙크였다. 사라는 보호소에서 허공을 바라보며 가만히 웅크려있던 윙크의 모습이 생각났다.
윙크의 입양자에서 파양자가 된 그들이 너무나 미웠다. 윙크에겐 윙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사라는 윙크의 상처는 사라 자신만이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하장사 장사라, sarah.j, 그리고 이젠 장사라 그 자체로 세 번째 인생을 살아가는 장사라 자신말이다.